"우리집에 숨어요"…美총탄 빗발칠 때 30명 구한 평범한 이웃
하이랜드파크 총기 난사서 이웃 주민이 자발적으로 수십명 대피시켜
총격 당시 '나홀로' 발견된 2살배기, 부모는 끝내 사망자 명단에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미국에서 독립기념일이던 4일(현지시간)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거리 행진을 구경하던 사라 샤그(39)는 갑자기 빗발치는 총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카고 인근 조용한 백인 동네인 하이랜드파크에 총격범이 나타나 총기를 난사하면서 흥겹던 거리는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사라와 남편은 아이들을 부여잡고 숨을 곳을 찾았지만 옥상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수십발의 총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 옆에서 "빨리 나를 따라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낯선 중년 여성이 손짓하는 게 보였다.
사라는 "수호천사가 나타난 줄 알았다"고 절체절명의 순간을 회고했다.
로이터 통신은 5일자 기사에서 하이랜드파크 총격 참사 당시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낯선 이들을 구한 '숨은 영웅'을 소개했다.
간호사로 일하다 은퇴한 64세 케런 브리튼도 그중 한명이다.
그가 독립기념일 행진을 구경하러 집앞 거리로 나선 지 얼마되지 않아 갑자기 총소리와 비명이 터져나오면서 축제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브리튼이 정신을 가다듬자마자 한 일은 재빠르게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있던 어린이 동반 가족에게 "나와 함께 가자"고 이끌었다.
브리튼이 몇분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이들은 모두 30명 정도.
총격범이 문밖을 돌아다닐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수십명을 집안으로 데려온 것이다.
간신히 한숨 돌린 뒤에도 이들을 당장 집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경찰이 총격범을 붙잡고 상황이 안전해진 것을 확인할 때까지 이들은 브리튼의 집에 머물렀다.
브리튼은 이날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이들에게 최소 4시간 정도 지하실을 내줬고, 허기를 달랠 빵,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나눠줬다.
이런 주민은 브리튼 뿐만은 아니었다.
로이터 통신은 하이랜드파크 주민 여러명이 긴박했던 상황에서도 대피소로 자신의 집을 내줬으며, 각각 15명 정도를 수시간에 걸쳐 보호해줬다고 전했다.
이들 주민은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달래려 디즈니 영화를 틀어주고 팝콘을 나눠주기도 했다고 한다.
브리튼은 5일 인터뷰에서 사건 당시를 회고하면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가 많았다. 나와 함께 가자고 그들을 이끌었다"면서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의지했고 서로 도왔다"고 말했다.
이날 집을 내줬던 또다른 주민도 "우리는 처음엔 모르는 사이로 만났지만 헤어질 때는 서로 포옹을 나눴다"고 말했다.
하이랜드파크는 백인 주민이 대다수인 주택가로, 많은 주민이 수십년째 한자리에서 살아가는 토박이라고 한다.
총격 사건 다음날 주민들은 충격과 눈물 속에서도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다니고, 식료품 가게에 들르는 등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는 듯 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한편 총격 당시 홀로 발견돼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산 2살 남아는 끝내 부모가 총격에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AP 통신이 5일 보도했다.
당국은 남아의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고 부모의 행방을 찾으려 수소문했으나 사건 다음날인 이날 총격 희생자 7명 중 부모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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