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빅테크들, '낙태 수사'에 방대한 이용자 데이터 건넬까
낙태권 부인한 대법원 판결뒤 주목…직원들은 잇달아 '행동' 촉구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미국에서 헌법상 여성의 낙태권을 부인한 연방대법원 판결 뒤 방대한 개인정보를 가진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경찰의 낙태 수사에 협조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례를 뒤집은 뒤 빅테크들이 경찰에 이용자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불법 낙태 기소를 도울지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많은 정보기술(IT) 기업은 인터넷을 지배하며 수십억명에 대한 데이터를 긁어모았다.
이와 동시에 전 세계의 많은 정부와 경찰도 이들의 거대한 데이터 풀(pool)에 점점 더 많이 눈독을 들이며 수색영장을 집행하거나 수사·기소를 뒷받침할 디지털 증거를 가져가고 있다.
이 때문에 사생활·개인정보 보호를 주장하는 활동가들은 사적인 메시지와 정치적 성향, 민감한 건강 정보로 가득한 이 방대한 데이터에 대해 우려를 제기해왔다.
실제 구글은 지난해 상반기 경찰에게 5만900여건의 정보 제공 요청을 받았는데 이는 2016년 상반기의 거의 4배에 달하는 것이다. 또 이런 요청의 82%에 대해 구글은 실제 정보를 제공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뒤 이제 일부 주(州)에서 낙태가 불법화되면서 이런 정보들이 낙태 시술을 받거나 이를 도와준 사람을 찾아내 체포·기소하는 데 이용될 수 있게 됐다고 WP는 지적했다.
판결이 나온 지 거의 1주일이 됐지만 빅테크들은 아직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아마존에서는 27일 한 직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의 번복에 따른 우리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위협에 맞서는 즉각적이고 결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부 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에는 29일까지 1천270여명이 서명했다. 이 직원은 또 아마존이 로 대 웨이드 판례의 번복을 규탄하고 낙태권 옹호 시위를 후원하는 한편 낙태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직원들은 내부 게시판에 고위 경영진의 침묵에 대한 좌절감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달 매니저들에게 사내 게시판에서 낙태 문제를 논의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던 페이스북 직원들도 역시 분노에 차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빅테크의 일부 직원은 회사가 이용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내부적으로 벌이고 있다.
구글에선 일부 직원이 내부 포럼에 경영진이 데이터 공유·수집 절차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MS에서도 비슷하게 회사가 이용자 데이터가 악용되지 않도록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알파벳 직원 노조(AWU)의 한 조합원은 구글이 이용자의 검색·통신·위치 기록을 경찰에 넘기면 이 데이터가 낙태하려는 사람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 구글이 이런 우려에 대처하는 데 전적으로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이 조합원은 구글이 미국에서 신체의 자율권을 행사하는 이용자를 기소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 어떤 데이터도 저장하지 말라는 게 AWU의 요구라고 말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 법학대학원의 캐서린 크럼프 교수는 "디지털 증거는 이 나라에서 범죄 수사가 이뤄지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놨다"며 "우리는 온라인에서 삶을 살아가며 우리 활동의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이들은 당연히 낙태 수사에서 적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럼프 교수는 빅테크 기업이 거의 확실히 주 법률을 준수하고 법원 명령에 따라 정보를 넘겨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하지만 그럴 때 이들 기업이 이용자와 대중에게 투명해야 하며 낙태와 관련한 법원 명령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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