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환율에 해외투자 차질빚나…20조투자 반년만에 부담 2조원↑
LG엔솔, 美 애리조나주 배터리 공장 투자계획 전면 재검토
기업들 "시장 상황 주시하며 다양한 시나리오 검토"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박성민 김기훈 김철선 기자 =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환율 급등 여파로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기업들이 국내외 투자계획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올 상반기 중 미국에 착공할 예정이던 1조7천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데 이어 다른 대기업들도 '플랜B'(대안책)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대기업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총 1천조원이 넘는 중장기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업계 등은 해외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거나 건설을 추진 중이어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장 상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리크(Queen Creek)에 1조7천억원을 투자해 연산 11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 신규 공장을 짓기로 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경영환경 악화에 따른 투자비 급등으로 투자 시점 및 규모, 내역 등에 대해 면밀하게 재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 신규 공장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 2분기 착공해 2024년 하반기에 양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발표 당시 1,213.8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착공을 앞둔 최근에는 1,300원대까지 급등하면서 비용이 2조원대로 껑충 뛰자 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LG에너지솔루션 주가는 이날 오전 11시 13분 현재 4% 이상 하락했다.
삼성전자[005930]도 170억달러를 투입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제2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지난해 11월 테일러시 부지를 확정할 때만 해도 투자 금액은 우리 돈으로 총 20조원 규모였으나, 6개월 만에 환율 상승 영향으로 2조원가량 부담이 더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다만 미국 법인에 유보된 달러 자금을 우선 활용하기 때문에 당장 환율의 영향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 내 인플레이션 심화로 원자잿값, 인건비, 물류비 급등으로 인한 비용 부담은 당초 계획보다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8.6% 폭등하며 1981년 12월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미국 사회 일각에서는 치솟는 기름값과 식료품값, 집값과 비교해 임금이 터무니없이 낮다며 임금 인상 요구가 잇따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현대차그룹은 조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20~22일)에 맞춰 미국 조지아주에 6조3천억원을 들여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공장 착공을 위해 사전 준비 중인 현대차[005380]는 예정대로 투자를 차질없이 진행할 계획이지만,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10대 그룹 관계자는 "대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목표 실적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대규모 투자에 대해서는 더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해 다각도로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기업 인사도 투자계획에 대해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투자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원화값이 싸지면 해외에서 원자재나 설비 등을 들여올 때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 상승과 함께 경기 위축에 따른 수요 둔화도 대규모 투자를 앞둔 기업들에 큰 고민거리다.
현대차와 기아[000270]의 5월 미국 판매량은 작년 동월 대비 30.0% 급감했다. 지난달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2천만대(점유율 20.9%)로 점유율 1위를 기록했지만, 전월 대비 6.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성전자는 가전제품 수요가 줄자 최근 TV 등 가전과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의 주문량을 줄이거나 연기하겠다고 협력 부품업체들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다만 지난달 발표한 450조원의 투자는 차질없이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최근 경영진과 해외법인장 등이 한데 모여 시장 상황 등을 점검하는 '글로벌 전략협의회'를 열고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창출하려면 투자가 지속돼야 한다"는데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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