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미 낙태권 축소하자 보란듯 낙태규제 완화
미 결정 사흘 뒤 출석심사 없애고 처방절차 간소화
"미, 여성 신체권 부정…자유진보 선두주자 100년 후퇴"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권을 폐지하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이스라엘이 자국의 낙태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조처를 단행했다.
28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의회 노동복지위원회는 전날 낙태약 처방을 위한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승인했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임신 12주까지는 여성들이 별도의 심사 절차 없이 의료체계 안에서 낙태약을 처방받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그간 임신부는 낙태약을 처방 받으려면 직접 별도의 위원회에 방문·출석해 심사 절차를 거쳐야 했다.
특히 관련 해당 규정은 1970년대 후반 제정된 이후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고 AFP는 전했다.
심사 자체가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임신한 여성이 출석해 낙태 여부를 '허락'받아야 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처지는 방식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직접 출석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일정이 맞지 않아 심사일을 한참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완화된 규정에 따라 낙태약 처방 신청을 위한 서류가 전산화 및 단순화되는 한편 직접 출석 의무도 사라질 전망이다.
새 방침은 3개월 안에 시행될 예정이다.
이는 미 대법원이 지난 24일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이른바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한 지 사흘 만에 이뤄졌다.
이를 두고 미국 내 유대인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국민 보호를 위한 사전 조처라는 해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니트잔 호로위츠 이스라엘 보건부 장관은 "여성의 신체권을 부정하는 미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억압적이며 자유 진보진영의 선두주자인 미국을 100년 후퇴시키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자국의 이번 완화 방침에 대해서는 "여성을 더 존중하고 선진적이며, 여성이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더 간단한 절차가 될 것"이라며 "이는 곧 기본 인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하레츠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는 2020년 6천734건의 낙태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55%는 임신 9주 미만 사례로 집계됐다.
한편,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지난 1973년 1월 여성의 낙태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14조상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명시된 판례다.
당시 판례로 미국에서는 그간 각 주의 낙태 금지 입법은 사실상 금지되거나 사문화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이 임신 15주 이후의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州) 법률에 대한 심리에 들어간 이후 결국 약 50년 만에 판결이 뒤집혔고, 미국 내에서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찬반 논쟁이 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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