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속 고달픈 러 유학 생활…일부 유학생 학업 포기
대학, 등록금 유예·식사 쿠폰 지원…심리상담 필요 목소리도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외국 유학생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 제재로 수개월째 해외 송금 등이 막히자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7일 러시아 극동 온라인매체 브이엘루(VL.RU) 등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온 부이 통 비는 러시아 정부에서 수업료 지원을 받으며 연해주 극동연방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매달 400달러(약 50여만원)씩 장학금도 받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후 러시아로의 송금이 중단돼 베트남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지 못하자 생활비 사용을 줄이고 있다.
그는 "계좌에 있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금액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부모님이 국제우편으로 음식과 옷 등을 보내지만 도착까지 한 달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어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장석대(28)씨는 서방 제재가 시작된 후 여러 단계를 거쳐 한국에서 가족들이 보낸 수업료 등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자신의 러시아 은행 계좌로 곧바로 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에 있는 부모님이 장씨와 함께 유학 중인 중국인 친구 계좌로 돈을 보내고, 이후 한 단계를 더 거쳐 장씨의 러시아 계좌에는 환율이 적용된 루블화가 입금된다.
장씨는 연합뉴스에 "매우 번거롭지만, 생활을 이어가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후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러시아 내 영업을 중단한 까닭에 외국인 학생들은 이미 만들어 온 해당 카드로 자국 계좌에 든 돈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자국에 있는 계좌와 연결된 중국의 유니온페이 카드가 있으면 블라디보스토크 일부 현금지급기(ATM)에서 루블화를 인출할 수 있다.
이처럼 서방 제재 후 러시아에서의 생활 환경이 힘들어지자 학업을 포기하는 외국인 학생들도 나온다.
장씨는 "최근 형편이 어려워진 라틴아메리카 및 한국 친구 10여 명이 공부를 관두고 완전히 귀국했다"고 전했다.
남아있는 외국인 학생들은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을 메우기 위해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작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와 극동연방대 어학원에 다니고 있는 한국인 A씨는 서방 제재 후 구인 광고도 많이 줄어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A씨는 "한국에서 모아 온 돈으로 생활비 등을 감당하고 있지만, 앞으로 1년 정도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돈을 송금받지 못해 생활비가 급한 A씨 주변 한국인 지인들은 우리 정부의 '신속 해외 송금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원래 우리 국민이 해외여행 도중 소지품 분실 등 사고를 당해 현금이 필요할 경우 국내 지인이 외교부 계좌로 입금하면 현지 대사관·총영사관에서 현지 화폐로 전달하는 제도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대(對)러시아 금융 제재 시행 후 러시아에 한해서 교민이나 유학생, 주재원 등도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확대 운영하고 있다.
신속 해외송금 1인당 이용 한도도 기존 3천 달러(380여만 원)에서 8천 달러(1천여만 원)로 늘렸다.
올해 기준으로 극동연방대에 등록한 외국인 학생은 3천500명이다.
이 가운데 1천300명은 캠퍼스에서 직접 수업을 들으며, 나머지 학생은 코로나19 방역 조치 등을 이유로 자국에서 원격수업을 받는다.
대학은 서방 제재 후 외국인 학생들을 돕기 위해 등록금 및 기숙사 비용 납부 유예, 식사 쿠폰 지원 등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캠퍼스 매점이나 카페 등에서 한 끼 식사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300루블(7천200원)짜리 쿠폰은 그 수가 제한적이라 이용을 하지 못하는 외국 학생들도 있다.
이처럼 서방 제재로 힘든 생활이 이어지자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학이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심리상담 등에도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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