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Eye] 뉴턴·다윈 거쳐간 영국 왕립학회에 첫 한국인 과학자

입력 2022-06-27 08:00
[런던 Eye] 뉴턴·다윈 거쳐간 영국 왕립학회에 첫 한국인 과학자

360여년 역사 세계 최고 과학학회, 한국인 이상엽·김빛내리 2명 처음 선발

영국 과학계, 한국에 관심…"협력 방안 모색·시각 공유 등 제안"





[※ 편집자 주 : '런던 Eye'는 런던의 랜드마크인 대관람차의 이름이면서, 영국을 우리의 눈으로 잘 본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영국 현지의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소개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학생들에게 보여주려고 뉴턴의 서명을 얼른 사진 찍었어요. 아인슈타인은 서명을 안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교과서에 등장한 과학자들이 이름을 적어넣은 책의 마지막 장에 저도 서명을 했죠"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부총장은 2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왕립학회(Royal Society) 회원 가입식에서 헌장에 이름을 적어 넣은 뒤 시차도 잊은 듯 환한 표정이었다.

찰스 2세 후원으로 1660년 설립된 영국 왕립학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 학회로, 크고 두꺼운 책 형태의 헌장에는 360여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거쳐 간 회원들의 서명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아이작 뉴턴이 18세기 초에 회장을 지냈고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등 과학사에서 주요한 등장인물 상당수가 회원이었다. 최근에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도 회원이 됐다.



이상엽 부총장은 서울대 김빛내리 교수와 함께 지난해 첫 한국인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발됐다. 왕립학회는 매년 10명 이내 외국인 회원을 별도로 뽑는다. 미국 국립과학원에 이미 한국인이 여럿 가입된 것과 비교하면 꽤 늦은 셈이다.

통상 가입식은 7월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신규 회원이 이제 초대됐다. 김빛내리 교수는 불참했다.

가입식은 런던 중심부 트래펄가 광장 근처에 있는 왕립학회 건물에서 개최됐다. 웅장한 건물 내부에는 역대 저명한 회원들의 초상화가 곳곳에 걸려있다.

아인슈타인은 2층 복도에, 호킹은 지하 식당에 있고 1층엔 천체물리학자 조슬린 벨 버넬이 있다. 버넬은 중성자별을 처음 발견했지만 정작 지도교수가 관련 연구로 노벨상을 받을 때는 빠졌고, 이 일은 과학계 여성운동을 촉발한 계기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입식 행사장 앞 복도에는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이면서 2019년에 97세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미국의 존 구디너프 사진도 있다.

왕립학회 관계자는 "학회에 상을 받으러 런던에 온 날 노벨상 발표가 났다"며 "다들 깜짝 놀라서 아침에 방에서 쉬고 있는 구디너프를 찾느라 소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가입식은 여왕을 나타내는 메이스(Mace·장식용 지팡이)가 입·퇴장하며 시작하고 끝난다.

이어 신규회원이 한명씩 단상으로 올라가서 헌장에 서명한 뒤 회장과 악수하며 가입 공식선언을 듣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들은 역사를 담은 책에 실수를 하지 않도록 미리 모여 서명을 하는 연습도 했다.

왕립학회 신규회원 선발은 기존 회원 추천과 동의를 거쳐 이뤄진다.

회원이 되면 우선 과학자로서 업적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현재 전체 회원은 약 1천600명이다.

또 회원들은 기후변화,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AI), 데이터 사이언스 등의 과학 이슈와 관련해 위원회를 운영하며 정책 조율을 돕고 영국 정부에 권고를 하는 역할을 한다.



왕립학회는 코로나19 사태 때는 다양한 분야 세계적인 회원들을 동원해서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상엽 부총장은 "우리나라 한림원과 마찬가지로 영국과 미국의 국립학회도 과학, 공학이 갈 방향을 살피는 기능은 비슷한데 국제적으로 조율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시스템대사공학 창시자인 이 부총장은 앞서 미국공학한림원, 미국국립과학원까지 세계 3대 주요 학회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이는 미국, 영국 외 국적에서는 선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알려졌다.

그는 "윤리적 문제가 없는 미생물을 조작해서 약, 연료, 플라스틱, 화학물질, 기능성 식품 등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을 생산하는 것이 대사공학"이라며 "내가 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 기술을 개발한 뒤 모아서 창시한 게 시스템대사공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여러 기업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전문가를 양성한 점을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이 부총장은 이미 초창기 KAIST 학술상과 젊은과학자상부터 시작해서 에너지·환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니상까지 20여년간 온갖 상을 쓸어 담아왔다.

그는 국가와 학교의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연구를 계속하고 세계 연구 커뮤니티에서 리더십도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제자들이 잘되는 것이 내 성과"라며 "그동안 교수만 해도 30명 이상 배출했는데 이제는 학계 진출 외에 창업도 많이 권한다"고 말했다.

노벨상에 관해서는 "질문을 자주 받아서 답변을 정해놨는데 제자들은 받을 것 같다고 하거나, 200살까지 살면 받을 수도 있겠다고 농담을 한다"고 답했다.

왕립학회는 갑자기 한국인 회원을 두명이나 뽑았을 뿐 아니라 지난해 보도자료에 이를 기재하고 가입식 취재를 주선하는 등 한국에 큰 관심을 보였다.

영국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유럽을 대신해 한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눈을 돌리는 흐름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부총장은 "이번에 왕립학회 회장이 요청해서 따로 만났는데 안건은 한국 등 아시아와 협력 방안 모색, 세계 문제에 관한 서로 다른 시각 공유, 중국으로 우수인력 유출 대응 논의와 함께 한국 방문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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