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낙태권 폐기' 주도한 얼리토 대법관은 누구

입력 2022-06-26 16:11
수정 2022-06-26 16:22
미 '낙태권 폐기' 주도한 얼리토 대법관은 누구

연방대법원 보수 판결 대변…"30년 동안 낙태권 끝낼 준비"

남녀 임금 평등·사측의 직원 피임 지원에도 '제동' 주도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미국 대법원에서 낙태권 폐기를 주도한 새뮤얼 얼리토(72)는 연방대법관 9명 중에서도 가장 보수색이 짙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2006년 1월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명으로 대법관에 올랐다.

그는 일찌감치 낙태권 폐기 논쟁의 한복판에 서 왔다.

지난달 폴리티코 보도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대법관 다수 의견 초안이 폭로됐는데, 이 초안을 쓴 작성자로 얼리토 대법관이 지목됐다.

이 초안은 결국 연방대법원이 24일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결말로 그대로 이어졌다.

연방대법원은 얼리토 대법관이 쓴 다수 의견문에서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낙태와 관련한 결정을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낙태권에 종언을 고했다.

얼리토는 대법관 9명 중 네번째 연장자이자 공화당 지명자로는 세번째 연장자다. 미 대법관은 보수성향 6명, 진보성향은 3명으로 분류된다.

뉴저지 출신으로 이탈리아계 가톨릭 신자인 그는 대법관 중에서는 유일하게 미군에서 복무한 이력이 있다.

부시 대통령이 그를 지명하자 그의 강경한 보수 성향을 이유로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했으나 상원 100명 중 58명의 찬성으로 대법관이 됐다. 당시 상원 44석을 차지했던 민주당 의원 중 그의 인준에 찬성한 의원은 단 4명이었다.

이번 낙태권 폐기는 얼리토 대법관이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체계적 전략에 정점을 찍은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짚었다.

그는 35세이던 1985년 법무부에서 일할 당시 로 대 웨이드 사건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도록 당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 권고했다고 한다.

당시 낙태권을 제한하는 주법을 상대로 한 소송 2건에 대해 그는 '더 점진적인 논거'를 조언하면서 "이 (점진적) 전략은 궁극적으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파기하는 목표로 나아가도록 할 것이며 그러는 동안 (판례의) 영향력이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방대법원까지 사건이 올라가면 당시 대법관의 보혁 구도상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파기될 가능성이 적다고 얼리토 대법관이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NYT는 전했다.

이후 30여 년에 걸쳐 얼리토 대법관은 자신의 구상을 완성해 결국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자신의 손으로 끝낸 셈이 됐다.



NYT는 "서서히 타올랐던 헌법상 낙태권에 대한 그의 적의가 낙태권을 뒤집은 연방대법원의 다수의견서의 작성자(얼리토)의 이력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수의견서에 예일대 로스쿨 1학년에 다니던 1973년 '예일 법저널'에 실린 존 하트 엘리 교수의 기고문을 "한 유력한 헌법학자는 이렇게 썼다"며 부분 인용했다. 그를 가르쳤던 엘리 교수는 이 기고문에서 "로 판결은 전혀 합헌적이지 않고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거의 부여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온 직후 실린 49년전 지도 교수의 이 기고문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낙태권에 대한 '적대'는 비로소 다수의견서에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로 판결은 그 출발부터 터무니없이 틀렸다. 그 법적 추론은 이례적으로 약하고 해악을 끼치는 결과를 낳았다"고 적시했다.

NYT는 "10년도 더 전에 대법관이 된 그는 이번 판결이 아니었다면 대법관의 보수 진영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을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그가 얼마나 천천히, 그리고 참을성 있게 그의 이력 내내 낙태권을 조금씩 잘라냈는지 보여준다"라고 해설했다.

그는 주목할 만한 연방대법원 판결에서도 보수 진영을 대변했다.

2007년 남녀 임금 평등을 골자로 한 '릴리 레드베터 법'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왔는데, 당시 얼리토 대법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다수 의견을 주도했다.

2014년에는 사측이 직원에게 피임 지원을 거부한 '하비 로비' 사건에서도 연방대법원은 사측의 손을 들어줬는데 여기에서도 얼리토 대법관의 목소리가 크게 작용했다.

newglas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