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속눈썹 크기 박테리아 발견…"에베레스트 키 인간 만난 격"

입력 2022-06-24 11:29
인간 속눈썹 크기 박테리아 발견…"에베레스트 키 인간 만난 격"

최대 2㎝까지 자라 눈에 안 보이는 단순 하등 생명체 인식 깨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카리브해의 맹그로브 습지에서 인간 속눈썹 길이의 세계 최대 박테리아가 발견돼 학계에 보고됐다.

박테리아가 맨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점을 고려할 때 흰색 실 가닥 같은 이 박테리아는 약 5천 배나 더 큰 것으로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인간을 만난 격"이라는 비유도 나왔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와 외신 등에 따르면 이 연구소의 해양생물학자 장-마리 볼랑 박사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최대 2만㎛(2㎝) 달하는 거대 박테리아를 발견한 결과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발표했다.

이 박테리아는 지난 2009년 서인도제도 프랑스령 섬인 과들루프에서 물에 떨어진 맹그로브 잎에 달라붙은 상태로 처음 발견됐다.

평균 9천㎛(0.9㎝)로 너무 크다 보니 박테리아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곰팡이류나 진핵생물 정도로만 추정했다가 나중에 실험실에서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박테리아라는 점이 확인됐다.

이전까지 가장 큰 박테리아는 1997년 나미비아 대륙붕의 해양퇴적물에서 발견된 '티오마르가리타 나미비엔시스'(Thiomargarita namibiensis)로 최대 크기가 0.75㎜였다. 입사광을 산란시키는 황과립을 함유하고 있어 흰색을 띄는 데다 진주목걸이처럼 사슬을 형성한 형태여서 '나미비아의 유황진주'라는 뜻의 학명이 붙었다.

과들루프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도 같은 속명에다 거대하다는 뜻의 종명이 붙어 'T. 마그니피카'(magnifica)라는 학명이 부여됐다.

약 350년 전에 처음으로 존재가 확인된 박테리아는 핵막이나 미토콘드리아, 엽록체와 같은 구조 없이 세포막과 원형질로만 단순하게 이뤄진 하등 생명체여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세포가 클 수 없는 물리적 한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T. 나미비엔시스 등이 발견되면서 이런 인식도 깨지게 됐다.



연구팀은 T. 마그니피카가 맹그로브 잎뿐만 아니라 굴 껍데기와 바위, 유리병 등 황이 풍부한 퇴적물이 있는 곳에서는 도처에서 확인된 것으로 밝혔다. 그러나 아직 이를 실험실에서 배양하지는 못해 제한적인 연구결과만 얻었다.

연구팀은 T. 마그니피카가 세포막에 다양한 구획을 갖고있으며 이런 구획들이 덩치를 키우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일부 구획은 질산염 등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하는 연료공장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됐으며, 인간 세포의 핵처럼 보이는 구획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구획들이 키위같은 과일의 작은 씨앗과 비슷하다고 해서 '페팽'(pepin)으로 지칭했는데, 각 페팽마다 DNA 고리를 갖고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보통 박테리아는 세포에 하나의 DNA 고리를 갖는데, T. 마그니피카는 수많은 페팽마다 모두 DNA 고리를 갖고 단백질까지 생성함으로써 덩치를 키울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워싱턴대학의 미생물학자 페트라 레빈은 AP통신과의 회견에서는 "거대 박테리아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던져주는 것으로, 박테리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면서 '놀라운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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