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낸 피해자 중도포기 없도록…영, 성폭력 전문법정 시범도입
피해자 세심 배려 차원…"피해자 상당수, 처리과정 고초에 가해자 사법 단죄 포기"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영국에 성폭력 사건 전문 법정이 시범 도입된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설치 대상 법원은 잉글랜드 리즈, 뉴캐슬, 스네어스브룩 등 영국 내에서 성폭력 사건 처리 비율이 비교적 높은 3개 형사법원이다.
전문 법정으로 지정되면 담당 직원은 모두 '성폭력 피해자 트라우마 방지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 법원 관할지역에서 성폭력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검찰 역시 의무적으로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법정에서 다루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독립된 전문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전문가는 피해자가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 피해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법정에는 영상 장비도 설치된다. 피해자들이 공판에 출석하지 않고도 법정 증언을 미리 녹화할 수 있다.
영국 정부가 이같은 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최근 성폭행 사건 기소율이 뚝 떨어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경찰이 접수한 성폭행 사건 6만7천125건 가운데 검찰의 기소를 통해 용의자가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1.3%에 그쳤다. 이는 2016년(2.5%)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작년 6월 영국 정부가 펴낸 '성폭력 범죄 조사·조치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의 절반 이상은 고통스러운 사건 처리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사법 처리를 중도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방식, 통상 2∼3년에 이르는 사건 처리 속도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정부는 지적했다. 또한 법정에서 피해 당시의 기억을 재소환해야 한다는 점도 피해자가 사건 처리를 망설이게 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도미닉 라브 법무부 장관은 성폭력 전담법원에 대해 "성폭행은 삶을 황폐화하고, 신체적·정신적 흉터를 남긴다"며 "그런데 피해자가 용기를 끌어모아 경찰에 출석해봤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소리나 듣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는 "더 심각한 것은 피해자 본인이 초고강도 수사의 대상자가 된다는 점"이라며 "피해자들이 재판에 가기도 전에 사건 처리를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달라져야 한다"며 전문법정 설치 취지를 설명했다.
라브 장관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조사 협조를 위해 경찰에 제출한 휴대전화를 24시간 내에 돌려받을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고, 성폭행 피해자 상담전화도 개설해 연중무휴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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