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를 가다] 지하창고서 숨죽여 버틴 '가장 길었던' 2주일
(마카리우[우크라이나]=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총성이 잦아들었을 때, 그 순간이 기회였어요. 조용히 문을 열고 물을 구하려고 우물로 뛰어갔습니다"
전쟁 초기였던 3월 마카리우에선 수도 키이우로 진격하려는 러시아군과 이를 막아내려는 우크라이나군 사이에 사투가 벌어졌다.
폭풍같은 총격전이 시작되자 이 마을 주민 클라브디아(73) 씨는 두 딸과 손녀들, 이웃집 아이들과 함께 습하고 쿰쿰한 곰팡내가 진동하는 지하 창고로 피신했다.
시가전이 금방 끝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곳에서 2주 동안이나 숨을 죽이며 버텨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2주였을 테다.
지하 피란 생활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물이었다.
우물은 창고 문에서 겨우 네다섯 걸음 거리였지만 언제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전쟁터에선 몇십m는 돼 보였다.
"딸 아이가 물을 긷는 그 잠깐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어요. 소리를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몇 번이나 소리쳤는지 모릅니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물 긷는 횟수를 최대한 줄여 보려고 목이 타들어 갈 때까지 참고 또 참았다고 한다.
클라브디아 씨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집은 미사일에 정통으로 맞아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났다.
그가 여기에 냉장고가, 저기에 세탁기가 있었다고 짚어주지 않았다면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은 폐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집안을 함께 둘러보는 동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다 사라졌다.", "모든 게 무너졌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의 가족이 숨어 지낸 창고에 들어가 보려 했더니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나무로 만든 바깥 문은 열리지 않아 아예 떼어내야 했다. 벽돌이 수북이 쌓인 계단을 일곱 칸 정도 내려갔더니 철로 만든 문이 있었는데 안쪽에 무엇인가 막고 있는 듯 밀리지도 않았다.
클라브디아 씨의 이웃집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부근에서 거의 유일하게 제모습을 유지한 비탈리(70) 씨의 집도 지붕이 없어져 유엔난민기구(UNHCR)가 나눠준 천을 덮고 나서야 간신히 비를 피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집 2층은 모두 무너졌지만 다행히 1층이 살아남았다. 10여 년 전에 당한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그는 1층에서 자고 먹으며 여섯 살 때부터 살아온 집을 홀로 고치고 있었다.
만만치 않을 수리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한 달에 나오는 연금 60만원을 쪼개도 모자라 그동안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다고 했다.
비탈리 씨가 생계를 유지하는 연금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때 예비군으로 차출돼 현장에서 사고 수습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목숨값'이라고 했다.
그는 3월 7일 새벽 5시 미사일이 집 근처 빵공장에 떨어지자 겨울옷만 몇 벌 챙겨 나와 바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국경 검문소에서 꼬박 하루를 지새우고 나서야 딸이 사는 폴란드 크라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2주 뒤 우크라이나군이 마카리우를 탈환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말리는 딸을 뒤로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러시아군이 완전히 물러난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일평생을 보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을 앞섰다.
"마을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고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12시간 넘게 달려 도착해 눈에 들어온 광경은 정말…."
말을 채 끝내지 못한 비탈리 씨는 인터뷰 도중 세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카리우와 연결되는 E40 고속도로를 타고 60㎞만 가면 50분 만에 키이우에 도착할 수 있다.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이 마을을 우크라이나군이 되찾지 못했다면 러시아군은 키이우로 바로 진군했을 것이다.
이 곳에서 특히 교전이 격렬했던 이유다. 하지만 맹렬했던 전투의 후유증은 마을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남았다.
전기, 가스, 통신까지 끊겨 유령도시 같았던 마카리우는 피란 갔던 주민이 하나둘 돌아오면서 다시 북적거리고 있었다. 전쟁 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비탈리 씨의 집이 수리되는 것처럼 조금씩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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