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장비 확보전에 직접 뛰어든 이재용…네덜란드 ASML부터 챙겼다
ASML의 EUV 노광장비 수주전 염두…"안정적 수급이 '반도체 초격차' 핵심"
유럽 최대 규모 종합반도체 연구소 imec도 방문…"미래시장 개척" 앞장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반도체 초격차' 확대를 위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전에 직접 뛰어들었다.
유럽 출장 중인 이 부회장은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고 삼성전자가 15일 전했다.
ASML은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의 초미세 반도체 공정 구현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전 세계에서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기업이다.
이 부회장은 피터 CEO와 마틴 반 덴 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ASML 경영진과 만나 미래 반도체 트렌드와 중장기 사업전략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차세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의 원활한 수급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도 배석했다.
이 부회장이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은 것은 2020년 10월 이후 20개월 만이다. 이는 반도체 초격차 확대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EUV 장비 수급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반도체 수요 증가로 업체들이 앞다퉈 설비 투자를 확대하면서 ASML의 장비 공급 부족도 심화하고 있다.
EUV 노광 기술은 극자외선으로 반도체에 회로를 새기는 기술로, 이를 활용한 EUV 장비는 최첨단 고성능·고용량·저전력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ASML이 한해 생산 가능한 EUV 장비 대수가 반도체 제조사들이 원하는 발주량보다 적은 탓에 장비 확보를 위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이 직접 ASML 경영진과 만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함으로써 EUV 장비 확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앞서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만나 ASML 장비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ASML의 인연은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미세화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대부터 반도체 제조 공정, 장비 개발 분야에서 ASML과 협력해왔다. 2012년에는 ASML에 지분투자를 하기도 했다.
특히 이 부회장과 ASML 경영진은 한국과 네덜란드에서 수시로 만나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부회장은 2020년에도 네덜란드 EUV 반도체 생산장비 제조 현장을 직접 찾았고, 2016년 11월에는 베닝크 CEO 등 ASML 경영진이 삼성전자를 방문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경기 화성과 평택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EUV 기술을 적용해 파운드리 제품과 고성능 D램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ASML과의 기술협력 강화 등을 통해 EUV를 비롯한 차세대 반도체 생산 기술을 고도화시켜 파운드리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고,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도 더욱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업계의 '절대강자'인 ASML과 파트너십은 제조사들의 최우선 과제로, 이 부회장의 지속적인 관심과 정성이 있었기에 두 회사가 전략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튿날인 15일에는 벨기에 루벤에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종합반도체 연구소 'imec'을 방문했다.
이 부회장은 루크 반 덴 호브 CEO와 만나 반도체 분야 최신 기술과 연구개발 방향 등을 논의했다.
imec는 1984년 벨기에와 프랑스, 네덜란드 3국이 공동 설립한 비영리 종합 반도체 연구소다. 현재 95개국에서 모인 4천500여명의 연구인력이 국가를 초월한 다국적 연구를 수행하며 3~10년 뒤 상용화될 미래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생명과학·바이오, 미래 에너지까지 다양한 분야의 선행 연구를 진행해 삼성의 미래 전략 사업 분야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지난달 삼성은 반도체 분야를 비롯해 바이오, 인공지능(AI) 및 차세대 통신 등 미래 신사업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이런 투자에 대해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 등 여러 제약 속에서도 ASML과 imec를 연이어 찾은 것은 삼성이 차세대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미래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려는 또 하나의 신호탄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지난 7일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은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을 돌며 전략적 파트너들을 만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뒤 오는 18일 귀국한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