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고급인력 10년간 5천565명 부족…가르칠 교수도 없다"(종합)
교육부 토론회서 학계·산업계 지적…"연구비 대폭 삭감돼"
"반도체 교수, 서울대도 10여명에 불과…계약학과 현실성 없어"
"대학원생 1명 육성에 1억 필요…실습 위한 '클린룸' 등 장비 부재"
(서울·세종=연합뉴스) 김지연 이도연 기자 = 최근 정부가 대학의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 등 첨단산업 인재양성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는 것과 관련해 주무부처인 교육부 주최 토론회에서 '정원 확대가 능사가 아니다'라는 학계, 산업계 지적이 쏟아졌다.
석·박사 등 반도체 고급인력이 앞으로 10년간 5천500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를 양성할 수 있는 반도체 교수가 태부족하고 설비와 같은 기반도 부족해 연구 환경이 열악하다는 지적이다.
◇ 2032년까지 석박사 5천565명 부족…"반도체 가르칠 교수가 없다"
15일 교육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 토론회는 정부가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본격 추진함에 따라 교육부가 학계, 산업계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실·국장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도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이날 발제문을 통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석·박사는 2023년부터 2032년까지 5천565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스템반도체(38%), 공정장비(30%), 소재(22%), 메모리반도체(10%) 순으로 반도체 4대 분야에서 모두 수급차가 날 것으로 예상됐다.
전문대 졸업자는 공급이 수요보다 1천명가량 많고, 대졸자는 공급이 6천200명가량 많아 남는 대졸 인력이 석사로 유입되기를 기대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업계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가 없어 학과 정원만 늘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황 교수는 전국 반도체 연구 교수는 400∼500명에 불과하며, 서울대 공대만 따져도 교수 약 330명 중에 반도체를 주력으로 연구하는 교수는 10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인재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현실성이 없거나 효용성이 없다"며 "계약학과는 정해진 기간의 계약이 해지되면 없어지므로 대학 입장에서는 임시 학과를 대상으로 정규 교수를 선발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교수로 선발되면 연구를 해서 실적을 내야 하지만 계약학과에는 학부생만 있으니 연구를 할 수가 없고, 계약학과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교수 채용에 한계가 있어 반도체 교수를 선발하려면 다른 학부나 학과의 교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 대학이 연구 중심 대학을 지향하는데, 대학평가 랭킹에서 영향력 높은 저널 논문 게재가 미덕으로 평가받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대학의 고급 반도체 인력 양성 기능이 크게 쇠퇴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는 이미 발전한 산업에 정부 연구개발비를 투입할 수 없다는 단순한 논리에 의해 연구비를 대폭 삭감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기업이 연구하지 않는 '크레이지(crazy·미친)' 아이디어가 학교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런 인재를 키울 교수가 없다"고도 말했다.
그는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들더라도 반도체를 연구하는 교수가 충분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석·박사급 고급 인력을 키워내는 것만이 현재 유일하게 가능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솔아 서울대 대학원생도 "연구실에서 지도교수 1명당 학생이 20명이 될 만큼 많아 세밀한 지도에 한계가 있다"며 "대학원 단계에서부터 인력 유출을 막으려면 국내외에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교수를 영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산업에 도움될 연구가 가능한 환경부터 갖춰야"
이날 포럼에 참석한 교수와 기업들은 단순한 정원 확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이끌 수 있는 인재 양성과 연구기능 강화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대학의 반도체 연구 환경은 수요를 뒷받침하기에 태부족이다.
황 교수는 올해 기준 정부 반도체 연구비 총액은 500억 원가량이라고 추산했다. 기업의 반도체 분야 산학 지원금도 정부 연구비 총액과 비슷한 수준인데, 주로 수도권 대학에 집중돼 있다.
대학원생 1명 육성에 드는 비용이 학비·인건비·재료비 등을 모두 합치면 1억 원가량이므로, 필요한 장비 등이 갖춰졌다는 전제하에 연간 육성 가능 정원은 1천 명 수준이라고 황 교수는 전했다.
계약학과를 추진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김형환 부사장은 "공대 졸업생을 신입으로 채용한 경우 학교 교육이 실제 반도체 개발·생산과 거리가 있어 2년 이상의 현장 경험과 재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기업 주도로 계약학과를 신설하고 있으나 교수진 확보가 어렵고 투입 비용의 부담 등 고충이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정원 확대, 계약학과 운영 관련 비용 세제 혜택, 관련 교수에 대한 지원 시 정부의 매칭(matching)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교수 역시 서울대 재료공학과에서 졸업생 30%는 반도체 기업에 입사하지만, 제대로 반도체를 가르치는 교수가 부족한 탓에 회사에서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계약학과 실습을 위한 '클린룸'(먼지·세균이 없는 생산시설)이나 장비 부재도 지적했다.
박 대학원생 또한 학교 차원에서 갖추기 어려운 고가의 장비와 관리 인력, 프로그램(툴)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이현철 SK하이닉스 채용팀 TL도 "학부 과정 졸업생들이 많이 취업하는데, 학생들과 실제 현업에 필요한 역량이 잘 매칭이 안 된다"며 "현업에서 1∼2년간 교육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 "균형 있는 인재 양성 방안 필요"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인재 양성에 '균형'이 필요하다고도 주문했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여러 갈래로 나뉜 분야에 고루 지원이 필요하고 고졸, 전문학사, 대학 학사, 석·박사까지 수준별 수요에 맞는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심에서 밀려날 수 있는 지역 인재 양성, 인력 부족이 심각한 중소기업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김지훈 이화여대 교수는 "반도체 관련 대학 정책 수립 시 설계, 반도체 소자 및 공정, 소부장으로 나눠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며 "특히 학교별 수준 및 선호를 현실적으로 고려한 정원 확대 등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특히 "나라 전체의 반도체 경쟁력을 위해서는 칩만 만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비즈니스를 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분야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동석 경북대 IT대학장은 "산업과 균형발전을 고려한 대학지원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며 "반도체 분야별 필요 인력을 고려해 '수준별'로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학부생인 오승준 씨는 "학부생들은 실습 수업을 하더라도 맛만 보는 정도에 그치게 된다"며 "지원이 늘어 연구실이 늘어나면 학부 연구생 기회가 늘어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날 오후에는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반도체 기업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등 연구기관과 함께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양성 특별팀'을 구성해 첫 회의를 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반도체 중소기업들은 인력이 대기업으로 이동해버리는 문제를 주로 토로하며 관련 정책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dy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