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 들어줘" 바이든 회유에도…미-러 중간서 꿈쩍 않는 주변국
대러 제재에 미 우방국만 동참…나머지 여전히 줄타기 고수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은 전례 없는 제재를 러시아에 가하고 있다.
기존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넘어 캐나다, 일본, 호주 등 전통적 우방은 대러시아 제재 대열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이상의 진척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인도, 브라질, 이스라엘, 중동 등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는 국가들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어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반(反)러시아 연대를 확장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저항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많은 아시아·아프리카·남미 국가들이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 제재 대오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동시에 러시아를 경제·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그게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나토 등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은 러시아 제재에 빠르게 동참했다.
NYT는 이렇게 미국 연대에 동참한 국가를 나열하면서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한국도 언급했다.
중립을 표방하며 대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이었던 국가들이 있긴 했지만, 미국은 충분히 자기들 편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전쟁 100일을 넘어선 지금까지 결과는 기대와는 달랐다.
NYT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들을 구슬리고 회유하려고 노력했지만, 전쟁이 4개월째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돌아선 국가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와 중국까지 더하면 이들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에 달한다.
브라질은 겉으로는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회담을 촉구하면서 그 이면에선 여전히 러시아와 그 동맹국인 벨라루스에서 비료를 수입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브라질 전문가인 발렌티나 세이더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러시아와 거리두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브라질은 자국의 이익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는 서방의 우려와 압박 속에서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더욱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남아공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나토 도발로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면서 오히려 러시아편을 들었다.
서맨사 파워 미국 국제개발처장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중립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외교적 노력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다급해진 쪽은 미국이 됐다.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 등으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여름에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저울질하는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여부가 주목받는 것은 지난 대선 기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비판하며 사우디 왕족을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치솟는 유가를 잡기 위해 왕따를 만들겠다던 사우디를 방문해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일부 국가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설지가 생존을 결정하는 문제일 수 있다.
미국은 아프리카 국가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수탈한 곡물을 수입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이들 국가엔 그 말대로 했다가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수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마이클 존 윌리엄스 시러큐스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인도, 브라질, 남아공은 전략적 차원에서 팽팽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며 이들이 미국의 편에 설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은 이번 전쟁에서 서방세계가 승리할 것으로 믿고 있다"며 "하지만 크렘린궁은 동부와 남부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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