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故 송해 조명…"전쟁과 가난 딛고 사랑받은 TV 진행자"
방송인 송해보다 인간 송해의 관점에서 접근
"누구와도 장애 없이 소통…늘 사람을 그리워했기 때문"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9일(현지시간) 최근 유명을 달리한 한국 방송인 고(故) 송해의 삶을 조명했다.
NYT는 서울발 기사에서 "전쟁과 가난을 딛고 사랑받는 TV 진행자가 된 송해가 세상을 떠났다"며 방송인보다는 인간 송해의 관점에서 그의 삶에 접근했다.
황해도에서 태어난 송해는 23살이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피란길에 올랐다.
유엔군 상륙함을 얻어 타고 남하했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망망대해 위에서 그는 본명 송복희를 버리고 바다 해(海)자를 따서 이름을 송해로 바꿨다.
NYT는 "송해는 북한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겨두고 떠났다"며 "그는 90세를 넘어서도 가족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이산의 아픔에 더해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아들이 1986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당시 송해는 TBC(동양방송) 라디오 교통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며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 이후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슬픔에 잠겨 있던 그에게 배우 안성기의 형인 안인기 KBS PD가 찾아왔다.
"이럴 때 바람이나 쐬러 다니자"며 전국노래자랑 MC를 제안한 것이다. 1988년 맡은 이 프로그램이 송해를 일으켜 세웠다.
상실한 자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송해는 우리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노인과 시골을 프로그램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한번은 양봉업자가 온몸이 벌에 뒤덮인 상태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했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바지에 벌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 외친 당시 송해의 진행은 지금도 '레전드'편으로 회자된다.
NYT는 "송해의 익살스러운 미소와 서민적인 재치가 결합하면서 전국노래자랑은 빠르게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송해는 지난 4월 95세의 나이로 기네스북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을 약 35년간 진행하며 전국 팔도 안 다녀 본 곳이 없었다.
바다 건너 일본, 중국, 파라과이, 로스앤젤레스, 뉴욕까지 가봤지만 정작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 땅은 밟지 못했다.
2003년 8월엔 광복절 특집으로 북한 평양 편을 찍었지만 삼엄한 분위기 때문에 차마 고향에 데려가 달란 얘기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오민석 단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송해의 삶을 담은 평전 '나는 딴따라다'(2015)에서 실향민으로서 송해의 마음속에는 매듭처럼 얽힌 외로움이 있다며 "그는 세 살짜리 어린애부터 115세의 할머니까지, 촌부에서 대학교수까지, 영세 상인에서 대기업의 총수에 이르기까지 소통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그것은 그의 내면이 늘 사람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송해 특유의 친화력과 포용력 이면에는 전쟁과 분단, 망향의 아픔, 아들과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 등 굴곡진 그의 인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송해 1927'을 통해 송해의 삶을 조명했던 윤재호 감독은 코로나19로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중단된 이후로 송해의 건강이 악화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사를 주고받는 것이 어떤 면에선 그에게 삶의 원동력이었다"며 고인의 별세를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한국시간으로 8일 오전 서울 강남의 자택에서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한국방송대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 무수히 많은 상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기려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chang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