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어려운 삼중음성유방암, 마침내 치명적 약점 찾았다
암세포 감싼 '세포질 그물', 유망한 공격 표적 '부상'
암세포 소멸 유도하는 'ERX-41' 화합물도 발견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 저널 '네이처 캔서'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삼중 음성 유방암(TNBC)은 유방암 중에서 가장 위험한 유형으로 꼽힌다.
유방암은 에스트로겐 수용체(ER), 프로게스테론 수용체(PR), 2형 표피성장인자 수용체(HER2) 등이 존재하는지에 따라 유형을 구분한다.
TNBC는 이들 세 가지 수용체가 모두 없는 유방암을 지칭한다.
전체 유방암의 12∼20%를 차지하는 TNBC는 특히 40대 이하 연령에서 발병률이 높다.
암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전이ㆍ재발 위험도 높지만, 흔히 쓰는 호르몬 치료나 표적 치료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치료 표적이 될 수 있는 관련 수용체가 모두 음성이기 때문이다.
현재 마땅한 치료 수단이 없는 TNBC 제거에 강력한 효과가 기대되는 '후보 약물'을 미국 텍사스대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ERX-41로 명명된 이 화합물은 ER 양성 유방암은 물론 TNBC 세포도 쉽게 제거하는 효능을 보였다.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메디컬 센터(약칭 'UT 사우스웨스턴')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 2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캔서'(Nature Cancer)에 논문으로 실렸다.
당연히 이 발견은 엄격한 과학적 탐구의 결과다. 하지만 어느 정도 행운도 따랐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UT 사우스웨스턴의 가네시 라지 비뇨기학 약학 교수는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자 표적을 발견했고 이런 약점에 곧바로 작용하는 치료제도 찾아냈다"라면서 "과거엔 손대지 못했던 암도 치료하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라지 교수팀이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작용하는 ERX-11이라는 화합물을 처음 찾아낸 건 2017년이다.
에스트로겐 수용체는 다수의 유방암 발생에 깊숙이 개입하는 단백질이어서 당연히 연구자들의 기대를 모았다.
ERX-11보다 효능이 더 강한 약물을 찾기 위해 관련 화합물을 반복 시험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게 ERX-41이다.
놀랍게도 ERX-41은 ER 양성 암세포뿐 아니라 TNBC 세포도 어렵지 않게 소멸시켰다.
생쥐 모델에 ERX-41을 투여하면 인간 암세포와 몇몇 유형의 관련 암세포 주(cancer cell line)에서 성장한 종양이 작아졌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독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포주(細胞株)란 체외 대량 배양이 가능한 세포를 말한다. 바이오 의약계에선 세포주 개발이 신제품 개발의 플랫폼 기술로 통한다.
현미경으로 보니 ERX-41을 투여한 암세포엔 '세포질 그물'(endoplasmic reticulum) 구조가 아주 넓게 퍼져 있었다.
ERX-41은 'A형 리소좀 산 리파아제'(LIPA)라는 지방 분해 효소의 활성화를 억제했다.
LIPA는 리보솜의 유전자 코드 번역으로 만들어진 폴리펩타이드가 단백질을 형성할 때 올바른 구조를 갖추게 돕는 일종의 '샤페론'(chaperone)이다.
ERX-41의 LIPA 억제는 세포질 그물 내의 스트레스 수위를 높여 암세포의 소멸로 이어졌다.
ERX-41의 효능 범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치료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신경교아종(glioblastoma), 췌장암, 난소암 등에도 강력한 항암 효과를 보였다.
단, 그러려면 암세포에 퍼진 '세포질 그물'의 스트레스가 높아진 상태라는 조건을 갖춰야 했다.
원래 단백질의 기능적 접힘을 돕는 것으로 알려진 '세포질 그물'이 삼중 음성 유방암 외의 다른 고약한 암에도 유력한 공격 포인트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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