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인터스텔라' 배우의 호소

입력 2022-06-08 15:22
수정 2022-06-09 07:36
[논&설] '인터스텔라' 배우의 호소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논설실장 = 에스에프(SF)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매슈 매코너헤이가 7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 섰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이 섰던 그 자리다. 그는 지난달 고향인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벌어진 초등학교 총기 참사 이후 대책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던 중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백악관을 찾았다. 18세 고교생의 총기 난사로 유밸디 롭 초등학교에서는 19명의 어린이 등 21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총기 소지의 합리적 규제방안에 대한 초당적 처리를 촉구한 뒤 기자들 앞에 선 매코너헤이는 "총기 구매 시 대기기간(a waiting period)과 적기법(red flag laws)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총기 구매 시 열흘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거나 위험인물의 총기 소지는 제한을 두자는 게 요지다. 적기법은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주에서 '극단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법'(ERPO)이라는 명칭으로 이미 도입된 법안이다. 당국에 의해 위험인물로 지목되면 총기는 압수되고 새 총기를 구매할 수 없는 규제를 담았다. 매코너헤이는 주를 넘어 연방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 역사상 학교 총기 난사로 2번째로 많은 생명을 앗아간 롭 초등학교의 비극에서도 AR-15 반자동 소총이 사용됐다. 총격범은 18세가 된 직후 합법적으로 이 소총 2정과 375발의 총알을 사 범행에 사용했다. 범행 현장에서는 총알 30개들이 대용량 탄창 7개도 발견됐다. 1950년대 개발된 이 소총은 미군의 제식 소총인 M16의 원형 모델로 지금은 민간용 소총 시장의 최고 인기 품목이다. 5.56㎜의 소구경 경량 탄환을 사용해 무게와 반동을 줄였으며, 탄환 속도가 빠르고 총열이 길어 살상력이 월등하다고 한다. 또한 30발 이상 대용량 탄창을 장착해 이용하기가 쉽다. 미국에서 400달러면 살 수 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총기 난사의 단골 무기가 바로 이 돌격소총이다. 주(州)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신분증만 제시하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구매자의 범죄 이력과 정신병원 입원 여부를 조회하지만 개인 간 거래에서는 무시되기 일쑤라고 한다.

총기사고에 대체로 무덤덤한 미국인들도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이번 참사에는 충격이 컸다. 총기 규제 여론이 들끓고 초당적 입법 움직임이 나온 까닭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의회가 논의 중인 법안에는 총기 구매 가능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21세로 높이는 것과 총기 구매자 신원조회 강화, 보관 시 안전조치 의무화, 대용량 탄창 및 반자동소총 판매 금지, 적기법 도입 등이 있다. 이 중 총알 10발 이상이 장전되는 대용량 탄창과 공격용 무기로 간주되는 반자동소총 판매금지 등이 실효성이 높을 테지만 입법 가능성은 작다. 문제는 미 총기 난사의 3분의 1가량이 반자동소총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구매자의 신원확인을 강화하고 온라인 구매를 막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결국 상원에서 부결됐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9세 이하 총기 사망자가 4천468명에 달했다. 어린이와 청소년 10만 명의 사망 원인 중 5.4명이 총기 사망이어서 자동차 충돌에 의한 사망(5명)을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총기 규제 법안은 번번이 의회 문턱을 못 넘은 게 현실이다.



그 배경에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가 있다. 이들의 정치인 후원과 총기 규제 입법 저지 활동이 주효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州)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수정헌법 2조가 그것이다. 1791년 제정된 이 조항은 총기 소지를 헌법적 권리로 위치시켰다. 신대륙 발견 이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서부 개척 시대를 거친 미국인들은 총기 소지가 자기방어를 위한 최소 수단이자 자유와 독립의 방편이라는 인식을 키워왔다. 민병대와 상관없이 개인의 총기 소지를 그 자체로 인정한 2008년 연방대법원의 '워싱턴시 대(對) 헬러' 판결은 이러한 믿음을 더욱 굳혔다. 총기 난사의 희생자가 많아질수록 총기 판매는 늘어나는 역설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미국은 거주자 100명당 보유 총기의 양이 120정이라고 한다. 사람보다 총이 많은 나라다.

매코너헤이는 백악관 브리핑룸 연단에서 "책임 있는 총기 소지자들은 수정헌법 2조가 남용되거나 일부 비정상인들에 악용되는데 진저리를 치며, 따라서 이들에 대한 규제는 일보 후퇴가 아니라 시민사회와 수정헌법을 위한 일보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텍사스주 오스틴 지역 일간지인 오스틴 아메리칸 스테이츠맨에 쓴 기명 칼럼(Op-ed)에서도 '총기 책임'(gun responsibility)과 '총기 규제'(gun control)를 구별했다. "총기 규제는 우리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명령이지만, 총기 책임은 권리를 보호할 의무이다. 총기 책임에 대한 헌법적인 장벽은 없다. 위험한 이들의 손에서 무기를 빼앗는 것은 책임 있는 일일 뿐 아니라 수정헌법 2조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면서다. 매코너헤이 역시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