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반도체 장비 확보 경쟁 치열…EUV 노광장비 뭐길래
네덜란드 ASML이 1년에 50대 안팎만 생산…한대에 2천~3천억원
반도체 첨단 공정에 필수…삼성·TSMC·인텔, 선점 경쟁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김철선 기자 =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네덜란드산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 장비 확보가 곧 생산능력 확대라는 인식 아래 그룹 총수까지 나서서 장비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005930] 이재용 부회장은 7일 장비 수급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EUV 노광 장비 생산지인 네덜란드로 떠났다.
앞서 올해 초 인텔은 2025년부터 적용할 인텔 1.8나노 공정을 위해 네덜란드 ASML의 차세대 EUV 노광장비 '하이 뉴메리컬어퍼처(High NA) EUV'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TSMC와 삼성전자보다 앞서 인텔이 가장 먼저 최신 장비를 확보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EUV 노광 장비는 말 그대로 EUV 노광 기술을 구현하는 장비다.
반도체의 원재료는 지름 30㎝의 실리콘 원판 '웨이퍼'로, 노광은 사진을 찍으면 필름에 상이 옮겨지듯이 웨이퍼에 자외선을 쏴 회로를 그리는 작업을 말한다. 회로를 얇게 그릴수록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오는 반도체 수가 늘어난다.
EUV 노광 기술은 짧은 파장의 극자외선(EUV)으로 세밀하게 회로를 그릴 수 있어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을 구현할 수 있다. 급증하는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저전력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회로를 새기는 작업을 반복하는 멀티 패터닝(Multi-Patterning) 공정을 줄일 수 있어 성능과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이 향상되고, 제품 출시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삼성전자는 2019년 4월 업계 최초로 EUV 공정을 적용한 7나노 시스템온칩(SoC) 제품을 출하한 데 이어 그해 하반기부터는 6나노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문제는 EUV 노광 장비가 네덜란드 업체인 ASML이 독점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대에 2천억~3천억원에 달하는 이 장비는 연간 50대 안팎 정도만 생산된다.
유안타증권[003470]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ASML의 EUV 장비 출하량은 48대로 그중 대만의 TSMC가 22대, 삼성전자가 15대를 가져간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예상 장비 출하량은 51대로, TSMC와 삼성전자가 각각 18대와 22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이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비해 앞다퉈 생산시설을 늘리면서 EUV 노광 장비 확보 경쟁도 더욱 불붙고 있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캠퍼스의 세 번째 반도체 생산라인 'P3' 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다.
또한 네 번째 생산라인 'P4'도 착공했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는 파운드리 2공장을 조만간 착공한다.
삼성전자는 이곳에서 EUV 장비를 활용한 최첨단 공정의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TSMC도 올해 400억∼440억달러(약 51조∼56조원)의 설비투자 예산을 잡아 놓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약 15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에도 새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인텔도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한 뒤 지난해 4월 20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1월에도 미국 오하이오주에 200억달러를 투자해 첨단 반도체 공장 2개를 건설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3월에는 향후 10년간 유럽에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을 위해 1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EUV 장비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출하량을 단숨에 급격히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EUV 장비는 집채만 한 거대한 시스템 덩어리로, ASML도 수백 개의 부품업체로부터 부품을 받아서 EUV 장비를 조립한다. 생산 능력을 확대하려면 수많은 협력사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최근에는 전 세계를 휩쓴 반도체 부품난으로 ASML 역시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장비의 리드타임(주문에서 납품까지 기간)도 훨씬 길어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장비 출하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어느 업체가 EUV 장비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반도체 시장 판도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ASML도 마음대로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는 데다 반도체 제조사의 공정에 맞게 장비를 튜닝해서 공급해야 하므로 협업이 필요하다"면서 "이 때문에 그룹 총수나 최고경영자들이 나서 ASML과 선계약을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ASML의 고난도 기술을 따라잡고 이미 형성된 공급망을 뚫고 들어가기는 사실상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그러나 한국도 반도체 장비 중 한국만이 공급할 수 있는 핵심 부품을 키워야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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