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우파 의원들, '팔레스타인 깃발 퇴출' 입법 추진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이스라엘 우파 의원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기관에서 팔레스타인 상징 깃발을 금지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일간 하레츠 등 현지 언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전날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의 엘리 코헨 의원이 발의한 일명 '적성국 등 국기 게양 금지법'의 첫 독회(讀會)를 열고 의원 투표로 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법안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기관에서 적성국은 물론 팔레스타인과 같은 적대적 관계의 세력을 상징하는 깃발을 흔들거나 게양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적대적 관계의 모든 국가와 세력을 포함했지만 사실상 팔레스타인 상징 깃발을 염두에 둔 법안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강제 이주한 것을 곱씹는 이른바 '나크바(대재앙)의 날'(5월 15일)에 아랍계 학생들이 대학 내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시위한 것이 입법의 발단이 됐다.
법안은 향후 3차례의 추가 독회와 의원 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입법이 마무리되면 정부 기관은 물론 대학과 병원 등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모든 기관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이 금지된다.
첫 표결에서는 전체 120명의 의원 중 63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16표였다.
극우부터 중도, 좌파, 아랍계까지 다양한 정당들이 참여하는 집권 연정은 의원 개개인에게 자유 투표권을 부여했는데, 극우 정당인 야미나를 이끄는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 등은 찬성표를 던졌다.
반면 집권 연정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중도성향 예시 아티드 소속 의원들은 크네세트 의장을 제외하고 모두 기권했다. 아랍계 정당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독회에서는 가시 돋친 설전도 벌어졌다.
법안을 발의한 코헨 의원은 아랍계 정당 연합 조인트 리스트 소속 의원에게 "나크바의 날은 당신들이 이스라엘을 부러워하는 날"이라며 "이스라엘이 강력한 나라가 되니 눈이 튀어나온다"며 도발했다.
그는 이어 "이스라엘의 자유 국가다. 자신을 팔레스타인 주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자지구나 요르단으로 가라. 차비는 대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조인트 리스트 소속 의원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소리쳤고, 좌파 정당인 메레츠 소속 모시 라즈 의원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비난했다.
조인트 리스트의 아이만 오데 대표는 코엔 의원을 겨냥해 "7년 전 나크바의 날을 금지한 이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 규정을 지키고 있는데 당신은 마치 식민주의자나 도둑처럼 행동한다. 깃발이 두려운가"라고 반문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점령지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금지한 바 있다. 또 1980년에 만든 법은 팔레스타인 깃발에 쓰인 검정, 흰색, 빨강, 초록 등 4개 색깔로 이뤄진 그림을 금지하기도 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오슬로 협정에 서명한 이후 이런 법률이 파기됐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종종 팔레스타인 깃발을 압수해왔다.
최근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테러범 색출 작전을 취재하다 사망한 알자지라 기자 시닐 아부 아클레의 장례식에서도 이스라엘군은 운구자들이 손에 든 팔레스타인 깃발을 빼앗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