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르포] "오전 2시에 왔어요"…한국대사관 장사진 사연 들어보니

입력 2022-06-02 07:00
수정 2022-06-02 09:52
[미얀마르포] "오전 2시에 왔어요"…한국대사관 장사진 사연 들어보니

유학 희망자들 통금 해제 오전 4시에 이미 200명 줄 서

"쿠데타 이후 학부모들은 좌불안석" "딸이 무조건 한국 가겠다고 한다"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지난 1일 새벽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있는 한국대사관 앞. 아직은 사방이 컴컴한 시간이었지만 청년 수백 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주미얀마 한국대사관이 며칠 전부터 SNS를 통해 "한국 유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한국 대학에 보내야 하는 서류의 공증 업무를 6월 1일부터 선착순으로 대사관에서 받아 처리하겠다"고 공지하면서 생겨난 장사진이었다.

대사관은 그동안은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아 해당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미얀마 인터넷 사정이 너무 열악해 일부 대도시에서만 접속이 가능한데다, 그나마도 속도가 너무 느려 접속이 잘 안 된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미얀마에는 아직 본인 인증 제도가 없어 인터넷 접수로는 본인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도 직접 접수로 바꾼 이유라고 한다.



직접 접수 첫날을 맞아 기자도 새벽에 대사관을 찾아가 봤다.

지난해 2월1일 쿠데타 이후 계엄령이 발동돼 통행금지가 시행 중인 양곤은 오전 4시가 돼야 통금이 해제된다.

4시가 지나자마자 기자는 대사관으로 차를 몰았다.

대사관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4시 20분께였다. 아직 사방이 어두운 시각이었지만, 이미 대사관 밖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눈대중으로 세어보니 200명가량이었다.

맨 앞에 있던 학생에게 언제부터 줄을 섰냐고 물었다.

학생은 "대사관 근처 친척 집에서 자고, 오전 2시 20분부터 줄을 섰다"고 했다.

오전 4시에 통행금지가 풀리는데 가능했냐고 묻자, 친척 집이 대사관과 매우 가까워 오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언제 군경이 폭력을 행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일찍 접수증을 받으려고 새벽 어둠을 뚫고 대사관으로 달려온 이 학생의 모습에선 절박함이 잔뜩 묻어났다.



오전 9시가 되면서 대사관 접수 업무가 시작될 때는 줄 선 사람들의 수가 500명가량으로 불어났다.

한국으로 딸을 유학 보낸 뚜자 륀(가명·42) 씨는 기자에게 "작년 쿠데타 이후로 미얀마 학교들이 문을 닫아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고 있다"며 "아이 앞날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유학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딸은 무조건 한국으로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그의 언니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나서 아이들 가진 부모들은 좌불안석이다. 유능한 교사나 교수는 모두 다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참여하고 있으니 학교에도 보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렵더라도 유학을 보내야 하는 데 안전하고 교육의 질도 가장 높은 나라로 학부모들이 한국을 가장 선호한다"고 했다.

그녀 역시 아들을 유학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대사관을 찾았다고 했다.

미얀마 지인의 아들을 유학 보내려 함께 왔다는 한인 A씨는 "코로나19와 쿠데타로 미얀마 대학은 2년이 넘게 휴교 상태"라면서 "아들 교육을 걱정하는 미얀마 친구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한국 유학을 추천했다"고 했다.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가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 간단치 않다.

교육청에서 출신 학교 관련 서류를 떼어 번역한 뒤 공증을 받고 이를 미얀마 외교부와 한국대사관에서 차례로 공증을 받아 한국 대학에 제출한 뒤 입학 승인을 받으면 다시 한국대사관에서 유학 비자를 받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대사관 유학비자 담당자는 기자에게 "한국으로 유학 가려는 학생들이 쿠데타 전과 비교해 5배 이상 늘었다"고 귀띔했다.

쿠데타 군부의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향학열을 불태우려는 청년들의 간절함이 컴컴한 새벽 속 장사진을 만들어낸 셈이다.

민주 진영의 승리로 끝난 지난 2020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면서 지난해 2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지속해서 폭력을 자행했고,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1천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2021340@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