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테라' 권도형 아세요?…싱가포르 한인사회 "처음 들어"
"설령 있었다 해도 한인들과 유대관계 없었다 보면 된다"
사무실 건물에 '테라폼랩스' 이름없어…안내직원 "사무실 보수 중"
(싱가포르=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USD(UST) 폭락 사태를 일으킨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싱가포르 한인 사회의 관심도 높았다.
권 CEO가 최근 트위터에 "지난해 12월부터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라고 밝힌 것을 계기로, 그가 싱가포르에 회사를 설립한 것은 물론 한 부촌 내 맨션에 주소지를 두고 있음이 한국 언론 보도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7일 기자가 접촉한 현지 한인들은 하나 같이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고 난 뒤에야 권 CEO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싱가포르 한인회에 따르면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인은 약 2만명이다.
11년 넘게 거주하면서 현지 한인사회 사정에 밝다고 자신을 소개한 교민 A씨는 "이번 사건이 공론화하면서 여기저기서 권 CEO를 아는지 물어왔다"며 "혹시나 그를 알 만하다고 생각되는 한인들에게 모두 연락해봤지만 하나같이 '나도 몰랐다' '보도를 보고 알았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A씨는 "권 CEO나 그 가족이 실제 싱가포르에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아는 한 한인사회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인회보에 싱가포르 내 한인들이 운영하는 업체나 근무하는 법인들이 적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자는 3개월 전 발행된 한인회보 겨울호와 최근 발행된 봄호를 확인했지만 '테라폼랩스' 이름은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경영인들의 모임인 '한국경영인회' 관계자도 기자와 통화에서 교민 A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회원이 60여명인데 이번 사태가 언론에 나오면서 시끄러워지고, 권 CEO가 싱가포르에 있다고도 하니까 여기저기 수소문해봤다. 그런데 모두 그 사람에 대해'들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40년 넘게 살았고, 지금도 여기서 사업을 하는 내가 모른다면, 적어도 권 CEO라는 사람은 한인들과는 전혀 유대 관계가 없는 걸로 보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지 한 대형 한국인 교회를 다닌다는 교민 B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권 CEO 가족이 싱가포르에 사는 건 맞느냐고 반문하면서 한국 언론 보도를 보고 싱가포르에 주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교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다니는 교회 커뮤니티에서는 그 사람을 안다거나 봤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B씨는 약 5년 전 한국 가상화폐 업체가 싱가포르에 법인을 설립하려 했을 때 통역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며 은행계좌 개설이 굉장히 까다로워 해당 업체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뜻을 거둔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싱가포르에 가상화폐 회사를 차렸다면 뭔가 비상한 재주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지 진출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교민 C씨도 회사 주변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리지만, 권 CEO를 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권 CEO가 싱가포르에 세운 테라폼랩스 본사도 '흔적' 찾기가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걸로 보인다.
기자는 이날 오전 싱가포르 중심부 한 고층 건물을 찾았다.
이 건물 37층에 사무실이 있다고 싱가포르 정부에서 발급받은 등기부 등본상에는 나와 있다.
안내데스크 직원은 37층 사무실을 방문하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에 "사무실이 현재 운영 중이 아니다"라며 "사무실은 보수 중"이라고 말했다.
입주업체가 표시된 로비의 전광판에는 이날 현재 61개 업체가 건물에 입주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중 한 업체에 대해 기자가 묻자마자 준비한 듯 운영 중이 아니라거나, 보수 중이라는 대답이 나온 것은 테라폼랩스 또는 건물 관리사무소 측에서 사전에 '지침'을 준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테라폼랩스가 원래 37층에서 영업을 한 것은 맞느냐"고 물었지만, 안내원들은 "관련한 정보가 없다. 그 사무실이 언제부터 운영했는지, 언제 다시 운영을 시작하는지도 우리는 모른다"고 답변했다.
A부터 W까지 알파벳 순으로 총 61개 업체가 표시된 입주 업체 안내 전광판에 '테라폼랩스' 이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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