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략' 비판없는 공동성명…"쿼드는 온건한 연합체"
무기 절반을 러시아에서 조달하는 인도 때문
"쿼드는 나토와 다르다"…"중국 자극 말고 지구적 과제 우선해야"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느슨한 비난을 내놓는 데 그쳤다.
러시아와 우호 관계인 인도의 동의를 얻는 데 중점을 뒀기 때문인데 쿼드가 특정 안보 이슈에 관해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틀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쿼드 정상회의 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이 보여줬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로 언급됐다.
공동성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갈등이나 충돌을 의미하는 'conflict'로 표현했으며 일본 정부 외무성이 작성한 공동성명의 일본어 임시 번역판에는 '분쟁'(紛爭)으로 기술됐다.
유혈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인 러시아를 명시하지도 않았다.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에서의 비극적 충돌이 격해지는 가운데 우리는 흔들림이 없다"고 언급하거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peaceful settlement of disputes) 원칙을 지지할 뿐 우크라이나에서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에 관한 구체적인 비판도 하지 않았다.
하루 앞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과는 대비된다.
미일 공동성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침략'(aggression)이라고 표현했으며 러시아를 명시적으로 비판했다.
쿼드 공동성명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은 러시아와 우호 관계에 있는 인도를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인도는 옛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도 무기 조달의 약 46%가 러시아로부터 공급된다.
인도는 브라질, 러시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과 함께 브릭스(BRICS)를 구성하기도 하는 등 이른바 '균형 외교'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쿼드 공동성명에는 '중국'도 명시되지 않았다.
동·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해양 질서에 대한 도전에 대항하기 위해 항행의 자유를 지지하며 분쟁지의 군사 거점화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대목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 분명하지만 중국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은 것이다.
공동성명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나 태평양 섬나라들과의 관계 강화 의지를 표명했는데 이들 국가가 중국과 가깝기 때문에 경계심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 이런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미·일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직접 지명해 핵 군축을 요구하거나 해양 군사 거점 확대 등에 반대하는 내용이 반영됐다.
쿼드는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을 축으로 삼아 아시아 안보 전략을 펼쳐온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는 새로운 틀이지만 높은 수준의 협력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쿼드는 구미 30개국이 가맹한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는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르다"며 "나토와 같은 군사동맹이 아니라 온건한 연합체"라고 25일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중국이 패권주의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굳이 자극해 긴장을 키우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라면서 쿼드가 감염증 대책, 인프라 정비, 기후변화 등 지구적 과제에 대한 대응을 우선해야 한다고 이날 지면에 사설을 실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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