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늦은 장례식…페루 1985년 농민 학살 피해자들 영면

입력 2022-05-23 00:34
37년 늦은 장례식…페루 1985년 농민 학살 피해자들 영면

군인들이 학살한 농민 80명 장례…여전히 유해 못찾은 이들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남미 페루 현대사의 대형 비극 중 하나인 1985년 농민학살사건 희생자 장례식이 37년 만에 뒤늦게 치러졌다.

지난 20일(현지시간) 페루 남부 아야쿠초주 아코마르카에선 37년 전 이곳에서 군인들에 살해된 주민들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이 엄수됐다고 AP·AFP통신 등이 전했다.

장례식장에 있던 관은 모두 80개였는데, 이중 유해가 들어있는 관은 37개뿐이었다. 나머지 관엔 아직 찾지 못한 유해 대신 고인들의 옷가지나 유품들이 들어 있었다.

아코마르카에서 잔혹한 학살극이 펼쳐진 것은 1985년 8월 14일이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에선 좌익 반군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을 소탕하기 위한 정부군의 작전으로 내전에 가까운 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7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야쿠초에서 탄생한 '빛나는 길'은 당시 아코마르카와 같은 산골 마을들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숨어다니고 있었다.

군인들은 '테러 분자'들을 찾겠다며 아코마르카에 쳐들어왔고, 주민들이 '빛나는 길'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음에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총 69명의 희생자 중엔 노인과 어린아이, 여성들도 포함됐으며, 여성들은 살해되기 전에 성폭행까지 당했다.

무고하게 살해돼 한꺼번에 매장됐던 시신들은 몇 년 전에야 비로소 발굴됐고 DNA 검사 등을 통해 일부가 신원이 확인돼 최근 유족들에게 전달됐다.

비슷한 시기 살해된 다른 이들까지 총 80명의 피해 농민들이 이날 사랑하는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영면에 들었다.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여전히 생생한 비극에 치를 떤다.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을 잃은 테오필리아 오초아(49)는 AFP에 "군인들이 사람들을 줄 세운 채 집 3채 안에 몰아넣고 총을 쏘고 불을 질렀다"며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끔찍했다"고 말했다.

지각 장례가 치러지긴 했지만,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다.

페루 사법당국은 2002년 사건 수사를 시작해 '안데스의 도살자'로 불리는 텔모 우르타도 당시 중위를 포함한 군인 10명에 23∼25년 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중 5명은 여전히 붙잡히지 않았다.

어머니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한 테레시아 감보아(60)는 EFE통신에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선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 37년간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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