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소상공인 대출 연착륙 안간힘…10년 분할상환까지 등장(종합)
KB, 금융지원으로 미뤄준 원금·이자 10년간 나눠 갚는 프로그램 개시
만기연장·이자유예 9월 종료 가능성…다른 은행도 5년 분할상환 등 운영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김유아 오주현 기자 = 소상공인·중소기업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밀린 대출 원금과 이자를 수월하게 갚도록 은행들이 10년 장기 분할 상환 등 파격적 조건의 연착륙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오는 9월 '원금 만기 연장·이자 유예' 금융지원 조치가 끝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지원 종료 이후 급격한 대출 부실을 막기 위해 금융 위험의 뇌관인 소상공인·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여신 건전성 관리에 나선 것이다.
◇ KB "9월 지원 종료 가능성에 선제 대응…업계 최장 10년 분할상환"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20일부터 '코로나19 특례운용 장기분할 전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적용 대상은 2020년 4월 이후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상으로 운영된 만기연장, 이자 상환유예 등의 기업 여신(대출) 특례 지원을 한 차례 이상 받은 계좌(대출자)다.
조건을 갖춘 대출자는 상환 방식으로 원금 균등분할 또는 원리금 균등분할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 있다.
균등분할 상환 기간은 최장 10년이며 거치 기간은 대출원금 만기 연장 대출자가 6개월, 이자 상환유예 대출자가 12개월 이내에서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소상공인이 최근 2년여동안 금융지원을 통해 2억원의 대출 원금 만기를 미뤄왔다면, 이 프로그램을 통해 6개월동안 이자만 내다가 이후 이후 9년 6개월에 걸쳐 원금과 이자를 분할 방식으로 천천히 나눠 갚아도 된다는 뜻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오는 9월로 예상되는 금융지원 종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라며 "종료 이후 상환 부담이 한꺼번에 커지는 데 따른 부실화를 막고 개별 대출자의 상황에 맞는 정상화를 지원하기 위해 업계에서 가장 긴 10년 분할상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 은행권 "더 연장하면 대출자도 부담"…분할상환·거치연장 등 대출 구조조정
은행권은 2020년 초부터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 방침에 따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원금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 상환도 유예했다.
지원은 당초 2020년 9월로 시한을 정해 시작됐지만, 이후 코로나19 여파가 길어지자 지원 종료 시점이 6개월씩 4차례나 연장됐다.
아직 오는 9월 금융지원 종료가 확정된 상태는 아니지만, KB국민은행 외 다른 주요 시중은행도 이미 종료를 가정하고 연착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상담을 통해 일부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지원이 끝나기 전부터 분할상환 등의 방식으로 구조조정에 벌써 들어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신한은행의 경우 대출자가 3가지 연착륙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우선 분할상환 기간을 총 유예기간의 3배 이내(최장 5년)로 연장해 대출 잔액을 균등분할 방식으로 갚을 수 있다. 상환 유예기간이 1.5년이라면, 유예된 분할상환금을 4.5년간 나눠 갚기 때문에 월 분할상환금은 3분의 1로 줄어든다.
유예이자 납부 기간을 총 유예기간의 5배 이내(최장 5년)로 늘리거나, 거치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택할 수도 있다. 당장 분할상환이나 유예 이자 납입이 어려운 고객에게 6개월 또는 12개월의 거치기간을 둬 원금·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도 비슷하게 통상 5년 분할상환 등의 연착륙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상환 유예된 이자에 대해서는 따로 이자를 받지 않고, 대출자가 당초 상환계획보다 일찍 대출을 갚는 경우 중도상환 해약금도 면제하는 등의 지원 방식도 공통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9월 지원 종료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은행 내부에서는 더 이상의 추가 연장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며 "구조조정 없이 무조건 원금이나 이자를 미뤄주면 대출자 입장에서도 향후 갚아야 할 부담 규모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5대 은행 2년간 미뤄준 원금·이자 139조원 '시한폭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금융 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원이 시작된 이후 올해 1월 말까지 여러 형태로 납기가 연장된 대출과 이자의 총액은 139조4천494억원에 이른다.
만기가 연장된 대출(재약정 포함) 잔액은 모두 129조6천943억원으로 집계됐다.
대출 원금을 나눠 갚고 있던 기업의 '분할 납부액' 9조6천887억원도 받지 않고 미뤄줬고(원금상환 유예), 같은 기간 이자 664억원도 유예됐다.
더구나 이자 유예액은 664억원 뿐이지만, 한은이 집계한 1월 말 기준 기업의 평균 대출 금리(연 3.30%)를 적용하면 이 이자 뒤에는 약 1조원(664억원/0.0330/2년)의 대출 원금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현재 5대 은행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약 140조4천억원(139조4천494억+1조원)에 이르는 잠재 부실 대출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도 지난 3월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중소기업의 대출 부실 위험을 경고했다.
한은은 "자영업자 취약 차주(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저신용자)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105.5%로, 다른 취약 차주 평균(59.6%)의 거의 두 배"라며 "이들의 연체율은 작년 말 4.4%로 여타 취약 차주(5.8%)보다 낮지만, 이는 금융지원 등에 따른 결과로 앞으로 지원 종료 등 정상화 과정에서 부실 위험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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