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 피투성이 임신부 "러, 가짜뉴스 몰면서 협박받아"

입력 2022-05-17 16:51
수정 2022-05-17 16:53
마리우폴 피투성이 임신부 "러, 가짜뉴스 몰면서 협박받아"

'전쟁 참상의 상징' 소박한 일상 파괴

"겪은 건 모두 사실이라 가짜라는 말은 모욕"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주변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러시아의 폭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산부인과 병원이다.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병원에서 이불로 몸을 감싸고 탈출한 만삭의 임신부 얼굴은 피투성이다. 얼굴에는 공포와 불안, 배 속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모성애와 단호함이 교차한다.

3월 9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폭격 직후 병원에서 탈출한 임신부를 찍은 AP 통신의 사진은 순식간에 퍼지고, 각종 매체에 실리며 화제가 됐다.

사진 속 우크라이나 임신부 마리안나 브셰미르스키(29)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가 됐으나, 러시아의 '가짜뉴스' 공세 속에 비난과 협박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의 포격에서 간신히 자신과 아이의 목숨을 구했지만 마리안나는 러시아가 만들어낸 허위 정보, 그와 가족을 향한 혐오라는 또 다른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영국 BBC 방송은 러시아가 '마리안나가 배우이며 사진에서 연기를 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렸고, 심지어 여러 다른 임신부들의 역할까지 했다고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친러시아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에서 먼저 "연출된 사진"이라는 가짜뉴스를 내보냈다.

뷰티 용품을 소개하는 블로거이자 소셜미디어(SNS) 인플루언서인 마리안나의 직업도 그가 메이크업으로 상처를 입은 것처럼 꾸몄다는 거짓 주장에 활용됐다.

러시아 측은 들것에 실린 또 다른 임산부도 마리안나가 연기한 것이라고 했고, 러시아 대사관까지 이러한 거짓 주장을 퍼 날랐다.

BBC는 이와 관련해 "마리안나와 전혀 다른 인물이며, 이 여성과 배 속의 아이는 결국 사망했다"고 전했다.



마리안나는 BBC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마리우폴 병원에서의 끔찍한 탈출 과정과 그 이후 벌어진 온라인 학대에 관해 전했다.

그는 "사진이 화제가 된 이후 나를 찾아와서 죽이고, 내 아이까지 토막을 내겠다는 협박이 이어졌다"며 "우리는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뒤집혔다"고 말했다.

마리안나의 남편은 현재 러시아에 포위된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군 마지막 저항 거점인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일했다. 마리안나 가족은 지금은 탈출해 돈바스 지역에 머물고 있다.

마리안나는 갑작스러운 폭격으로 병원이 뒤흔들릴 당시 다른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폭격에 그는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 올렸고, 잠시 후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마리안나는 다른 환자들과 지하로 대피했으나, 이미 이마가 찢어지고 유리 파편이 피부에 박힌 상태였다. 그 순간에도 그는 병동에 두고 온 물건들을 떠올렸고, 경찰관에게 다시 병실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이 병실에 있었다"고 당시 순간을 떠올렸다.

마리안나는 탈출 며칠 후 다른 병원에서 무사히 딸 베로니카를 낳았다.

그는 "그러나 아직도 SNS에는 비난과 협박 메시지가 쏟아진다"며 "내가 겪은 것은 모두 사실이기 때문에 가짜라는 말을 듣는 것은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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