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미주정상회의 반쪽 되나…'반미 국가' 초청 갈등(종합)
개최국 미국,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 배제 가능성 시사
멕시코 대통령 "모든 국가 초청되는 것 아니면 나도 안 가"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다음 달 미국서 열리는 미주정상회의의 초청 범위를 놓고 미주 내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개최국 미국이 쿠바 등 일부 국가를 부르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하자, 멕시코 등이 반발하고 나섰다.
10일(현지시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미주정상회의에 모든 (미주) 국가가 초청되지 않는다면 멕시코에선 내가 안 가고 외교장관이 대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우리는 대결이 아닌 화합을 해야 한다"며 "이견이 있다 해도 배제하지 말고 들어보기라도 하면서 해결해야 한다. 누군가를 배제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고 강조했다.
제9차 미주정상회의 개최국인 미국은 내달 6∼1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회의에 쿠바와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 반미 성향의 국가를 초청하지 않을 수 있음을 최근 시사한 바 있다.
지난달 말 브라이언 니콜스 미 국무부 차관보는 초청 여부는 백악관이 결정한다면서도 이들 3국은 "거기 있지 않을 것 같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3국 정부는 민주주의 약화와 인권 탄압 의혹 등의 이유로 미국의 제재를 받는 정권들로, 미국은 한때 이들 3국을 '폭정의 트로이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니카라과의 경우 이미 초청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대신 미국이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측이 초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방침에 쿠바는 "쿠바나 다른 나라를 빼놓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도 미주의 모든 정상이 초대돼야 한다며, 지난달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런 의견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일부 카리브해 국가 정상도 미국의 일부 국가 제외와 과이도 초청 계획에 반발해 회의 보이콧을 논의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개스턴 브라운 앤티가바부다 총리는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배척하는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며 "따라서 앤티가바부다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카리브해 섬나라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의 랠프 곤살베스 총리 역시 마두로 대신 과이도가 참석한다면 자신은 가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아직 미주정상회의 초청장을 발송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들 3국이 배제되고, 멕시코 등 일부 국가 정상이 이에 반발해 대리인을 보내거나 아예 불참한다면 미주정상회의가 반쪽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는 별도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불참 가능성이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놓고 응원했던 극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아직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
중남미 1, 2위 경제국인 브라질과 멕시코 정상이 모두 불참한다면 이번 회의는 상당히 빛을 잃게 된다.
이번 미주정상회의를 통해 이민 문제 등의 해법을 모색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중남미 영향력을 견제하며 미주 간 결속을 다지길 원하는 미국 정부로서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미주정상회의는 1994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1차 회의가 열린 이후 3∼4년 주기로 열리고 있다.
쿠바는 1959년 공산혁명 이후 미주기구(OAS)에서 한동안 추방돼 미주정상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가 미국과 쿠바의 해빙 분위기 속에 파나마에서 열린 2015년 7차 회의에 처음 초대됐다.
2018년 페루에서 열린 8차 회의에도 쿠바는 연속으로 초청됐으나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초청받지 못했고,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대신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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