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출범] "민감문제 타당처리"…올리브가지 속 견제구 넣은 中
尹 만난 왕치산, 우호협력 강조하면서 미국의 대중압박 동참 견제
시주석 답방 차례인데 윤대통령 방중 초청…정상외교 '제로베이스' 제안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 정부는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대해 일단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지만 '견제구'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중관계 중시 기조하에 한국 새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고민했던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해 급격히 미국 쪽으로 쏠릴 가능성을 견제한 것이다.
중국은 이날 한국 대통령 취임식 사절로는 역대 최고위급인 왕치산 국가 부주석의 윤석열 대통령 예방 계기에 한중 협력과 우호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냈다.
왕 부주석은 방명록에 '중한우의 세대전승'을 썼고, 윤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진전, 한중간 전략적 소통 및 대화·교류 강화, 산업 공급망 등과 관련한 실질적 협력 강화, 국민 우호 증진,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및 국제무대에서의 조율 강화,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추진 등을 제언했다.
'뼈 있는 말'은 기자들이 자리한 공개 발언 세션 후반부에 나왔다.
왕 부주석은 한중관계에 대한 제안 중 마지막 항목에서 "민감한 문제를 타당하게 처리"할 것을 당부했다.
이 표현은 지난 2월 28일 정의용 당시 외교부 장관과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간 영상 통화, 같은 달 5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중한 박병석 국회의장과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의 회동 등 계기에 중국 측이 잇달아 거론한 것이다. 이 표현은 주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 맥락에서 중국이 한국에 보내는 견제의 메시지로 사용된 표현이다.
이번에 왕치산 부주석이 다시 이 표현을 거론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2017년에 밝힌 이른바 '사드 3불(사드 추가 배치·미국 미사일방어체계 참여·한미일 군사동맹화 등 3가지를 안 한다는 의미)' 입장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유지되기를 바라는 의중을 담은 것일 수 있어 보인다.
사드를 넘어 미국의 대 중국 압박 전선에 한국이 동참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의 일환으로 2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계기에 한국이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협의체) 참여 또는 한미일 3자 군사협력 개시 등을 통해 미국의 대 중국 견제망에 적극 가담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왕 부주석이 한중일 정상회의 등 3자 협의틀을 확대하는 '한중일+X' 협력을 추진하자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인도·태평양 전략하에 동맹국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전략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한중일 3자 틀을 적극 활용하려는 취지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윤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요청한 부분도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문 전 대통령이 2017년과 2019년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지만 코로나19 상황 속에 시 주석의 답방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 측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중간 대면 정상외교는 시 주석의 한국 방문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먼저 윤 대통령의 방중을 꺼낸 것은 한국 정부가 새로 출범한 만큼 '제로 베이스'에서 정상외교를 시작하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시 주석이 코로나19 본격 발생 첫해인 2020년 초 이래 지난 2월 자국서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 때를 제외하고는 정상 간 대면 외교를 중단하고 있는 상황과 본인의 연임 여부가 걸린 중대 정치 일정인 하반기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베이징에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설사 윤 대통령이 방중하더라도 언제쯤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구체적 일정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해 중국 측은 "양측이 편리한 시기"에 윤 대통령의 방중을 추진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상호존중의 한중관계'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으로선 중국의 초청에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중 관계의 첫 단추를 끼우는 문제에서 정상 간 왕래와 관련한 외교 관례를 지키는 차원에서 시 주석의 방한을 역제안할지, 아니면 중국의 제안을 수용할지 관심을 끌게 됐다.
또 하나 주목되는 대목은 왕 부주석의 수행자 면면이다.
우선 상무부 부부장(차관)의 동행은 반도체 공급망 등과 관련한 중국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문화관광부 부부장의 동행은 올해가 한중수교 30주년의 해인 점 등을 감안, 사드 보복의 일환인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의 해제와 관련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미가 있을 수 있어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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