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푸스병 피부 발진, 햇볕 많이 쬐면 왜 심해질까

입력 2022-05-04 18:03
루푸스병 피부 발진, 햇볕 많이 쬐면 왜 심해질까

겉으론 멀쩡한 피부도 '염증 신호' 강해

피부 이동 수지상세포, 인터페론 신호로 '염증 촉진'형 전환

미국 미시간 의대 연구진, 저널 '사이언스 중개 의학'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루푸스병(lupus)은 면역 이상으로 온몸에 염증이 생기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이다. 우리 말로는 '전신 홍반성 낭창'이라고 한다.

루푸스에 걸리면 장기, 혈관계, 조직 등이 염증으로 손상돼 기능 부전으로 이어진다.

희소 질환이긴 하나,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훨씬 많다. 특히 가임기 여성에게 많이 생기는 경향을 보인다.

루푸스병 환자의 70∼80%는 다른 부위의 염증과 별개로 피부 발진이 나타난다. 이를 따로 '피부 홍반 루푸스'(CLE)라고 한다.

이 유형의 루푸스 환자는 자외선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환자의 30∼40%는 장시간 햇빛에 노출될 경우 증상이 악화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미국 미시간 의대 과학자들이 루푸스병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 밝혀냈다.

루푸스병 환자는 발진이 생겼을 때와 똑같은 염증 신호가 정상 피부에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환자에 따라선 정상 피부의 염증 신호가 발진 시보다 훨씬 더 강한 경우도 있었다.

미셸 칼렌버그 류머티스학 부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사이언스 중개 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논문으로 실렸다.



4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피부에 자외선 자극이 가해져 루푸스병의 염증을 악화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할 실마리를 찾은 거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7명의 루푸스 환자로부터 발진이 생긴 피부와 겉보기에 정상인(normal-appearing) 피부의 샘플을 각각 채취해 단세포 RNA 시퀀싱(염기서열 분석)을 진행했다.

루푸스 환자는 예외 없이 피부의 자외선 민감성을 유발하는 1형 인터페론 신호가 대조군보다 강했다.

특이하게도 가장 강한 인터페론 신호는 염증이 생긴 피부가 아니라 정상 피부에서 잡혔다.

이렇게 인터페론 신호가 강한 특성은 표피를 구성하는 각질형성세포에 나타난 게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피부의 연결조직을 만드는 섬유모세포(fibroblast)에서 인터페론 신호가 강해진 변화를 관찰했다.

이는 모든 피부 세포 유형에서 유전자 전사를 왜곡했고, 세포와 세포 사이의 신호 교환을 교란했다.

루푸스병 환자의 피부는 겉보기에 멀쩡해도 언제든지 염증 반응을 일으킬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시사한다.

연구팀은 면역세포가 루푸스병의 염증 진행을 어떻게 촉진하는지도 검사했다.

선천 면역계의 주요 멤버인 단핵구(monocyte)의 하위 유형, 다시 말해 루푸스 환자에게 많은 CD16 양성 수지상세포(CD16+dendritic cell)이 핵심 역할을 했다.

이들 세포는 혈액에 섞여 피부로 몰려갈 때 염증성 세포로 전환하는 인터페론 '세포 교육'(cell education)을 거쳤다.

이 과정을 통과한 수지상세포는 표현형(phenotype)이 '염증 촉진성'으로 바뀌었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칼렌버그 교수는 "루푸스병 환자의 피부 환경, 특히 피부 내에 발현하는 인터페론이 수지상세포의 성질을 바꿔 나머지 면역계의 스위치가 켜지게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터페론도 선천 면역계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일례로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가 침입했을 때 위험 경보를 울리는 게 인터페론이다.

하지만 자가면역질환에선 인터페론이 악역을 맡는다.

실재하는 위협 요인이 없을 때 인터페론이 너무 많이 생성되면 면역세포가 돌변해 자기 세포를 공격한다.





아직 어떤 자극 요인이 면역 반응의 균형을 무너뜨려 심한 발진을 일으키는지 모두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자외선이 포함된다는 건 이번 연구로 확실해졌다.

특히 피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지상세포의 염증성이 강해진다는 게 중요한 발견이라고 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연구팀은 루푸스병으로 타격을 받는 뇌, 신장 등의 과도한 면역 반응도 동일한 과정을 거쳐 촉발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세포 수준의 면역 반응 변화를 이해하면 루푸스병을 치료하는 정밀 의학도 가능해질 거로 기대된다.

환자 개개인의 면역 특성을 분석해 치료 옵션 등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논문의 공동 제1 저자인 앨리슨 빌리 박사는 "피부 증상에 초점을 맞춘 이번 연구를 통해 어떤 면역세포가 어떤 방법으로 루푸스병의 염증을 조율하는지 부분적인 통찰을 갖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che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