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아이파크 '전면 철거 후 재시공' 첫 사례…2028년 입주할 듯(종합)
준공까지 5년10개월 소요…공사·입주자 보상비 3천750억원 전망
신뢰도 추락·정치권 압박 등에 새 정부 출범 전 결단 분석
전면철거 입주자 요구 수용했지만 비용 등 협상과정 길어질 수도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이 지난 1월 외벽 붕괴사고를 낸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를 전면 철거 후 재시공하기로 함에 따라 이 아파트의 입주가 6년 가까이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 아파트는 당초 올해 11월 입주 예정이었으나 오는 2027∼2028년 이후에나 입주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산업개발이 입주민들의 요구를 전격 수용해 '전면 철거'라는 결단을 내렸지만, 철거 후 재시공이라는 국내에서는 역대 전례 없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데다 영업정지 등 행정 처분에 대한 법적 다툼도 이어가야 해 회사측의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안전진단 결과 없이도 전면 철거 결정…"비용보다 신뢰회복 급선무"
현대산업개발이 화정아이파크 사고 수습 대책으로 사고가 난 201동을 포함해 8개 동 847가구(오피스텔 포함)에 대한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결정한 것은 '돈'보다는 회사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정몽규 HDC[012630] 회장은 4일 서울 용산 사옥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2월 실종자 구조작업이 끝난 이후 피해 보상을 위한 대화를 이어왔지만 입주 예정 고객의 불안감이 커졌고, 회사 또한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기업가치와 회사에 대한 신뢰 또한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면서 "이에 현대산업개발은 입주예정자들이 요구하신 대로 화정동의 8개동 모두를 철거하고 아이파크를 새로 짓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 사퇴 기자회견에서 사고가 발생한 201동만 전면 철거하고, 나머지 동에 대해서는 정밀 구조안전진단 후 안전에 문제가 있을 경우 철거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안전진단 결과와 무관하게 8개 동 전체를 모두 철거한 후 재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데는 추락한 회사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 현장 붕괴 사고와 올해 초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사고 등 연이은 대형 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주 운암3지구를 비롯해 앞서 수주한 정비사업 조합 측으로부터 시공사 참여 배제 요구를 받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시공사 자격이 박탈되는 등 사업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또 지난해 6월 발생한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현장 붕괴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지난 3월 서울시로부터 8개월의 영업정지까지 받았다.
현대산업개발은 시의 영업정지 처분에 대해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하고 집행정지(효력정지)를 결정을 받아내 일단 본안소송 1심 판결까지는 시간을 번 상태다. 그러나 법정 다툼에서 이겨야 영업정지 처분을 면하게 된다.
서울시는 학동에 이어 현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에 대해서도 추가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두 차례의 대형 사고를 낸 현대산업개발에 대해 '등록말소'라는 중징계를 내려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한 상태여서 '1년 영업정지'보다 센 등록말소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결정에는 현대산업개발을 향한 정치권의 거센 질타도 영향을 미쳤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달 19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을 찾아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했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겸 인수위 기획위원장도 같은 달 29일 현장을 방문해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와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난다면 기업은 망해야 하고 공무원은 감옥에 가야 한다"며 강한 어조로 현산을 비판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안전에 문제없는 동까지 전면 재시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단이지만 아이파크 브랜드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며 "새 정부 출범 전에 결자해지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 공사·보상비 3천700억원 예상…입주자 계약 해지도 가능
현대산업개발은 이날 전면 재시공에 따른 철거·시공비와 입주 지연으로 인한 주민 지체보상금 등 보상비를 합해 3천700억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산업개발은 화정아이파크 사고 비용으로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1천754억원을 손실 처리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나머지 2천억원은 올해 이후 추가로 비용에 반영할 예정이다.
올해 1분기 현대산업개발의 영업이익은 681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42.5% 감소했는데 앞으로 대규모 영업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입주자와의 협상 결과에 따라 관련 비용은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앞으로 6년 가까이 입주가 지연되는 데 따른 피해액 보상 과정도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산업개발은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거쳐 준공하는 데까지 5년 10개월(70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골조 공사가 끝난 건물을 철거하고 재시공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인 만큼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공사 기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회사 측은 현재 아파트가 도심에 있어 폭파 방식의 철거가 불가능해 상층부터 한 층씩 뜯어내는 '탑다운' 방식을 쓸 경우 철거 기간만 45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입주 예정자들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과 표준 분양계약서 등을 근거로 입주 지연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분양계약 유지를 원할 경우에는 현대산업개발로부터 분양계약서상에 나와 있는 연 6.48% 이자로 입주 지연 기간만큼 지체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광주 화정아이파크 계약자들은 계약금 10%와 중도금(60%) 6회차 중 4회차까지 분양대금의 총 50%를 납부했다. 분양가 5억4천500만원짜리 201동 전용면적 84㎡ 아파트 계약자가 현재까지 4회차 중도금을 납부했다면 2억7천250만원에 대해 연 6.48%의 금리로 입주 지연 기간 만큼 지체보상금을 받는다.
입주가 약 6년가량 지연되면 지체보상금만 1인당 1억600만원, 전체적으로는 1천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계약 해지 요구도 가능하다. 사업시행자의 귀책 사유로 입주가 예정일보다 3개월 이상 지연되면 입주 예정자들이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전체 분양가의 10%에 해당하는 위약금과 함께 기납부한 분양대금에 대해 연 1.99%의 금리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 외에 양측의 협상이나 소송을 통해 민사상의 물질적·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해 현대산업개발의 피해 보상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현대산업개발 퇴출 및 학동·화정동참사시민대책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광주시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대책과 광주시민에 대한 진솔한 사과였는데 이번 발표에서는 사과와 대책, 사회적 기여에 대한 부분은 모두 빠져 있다"며 "영업정지 또는 업계 퇴출을 요구한 국토부의 방침에 따라 진행될 서울시의 행정조치에서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유도하려는 의도된 행동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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