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꿈꾸는 日정치권…유권자 67% "자위대 명기 개헌 찬성"
우크라 침공·北 미사일·中 대만 침공 위협 등 안보 불안감 지렛대로 활용
자민당 '2025년까지 개헌 완료' 태세…연립여당과 야당 협조 가능성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이른바 '평화 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 9조의 개정에 일정한 요건 아래서 찬성하는 일본 유권자가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집권 자민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정세 급변 등을 지렛대로 삼아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려고 하고 있다.
◇ 유권자 3분의 2 "자위대 명기하는 개헌 찬성"
교도통신이 3∼4월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우편 여론조사에서 개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은 68% 수준으로 필요가 없다는 응답(30%)의 두 배를 웃돌았다고 도쿄신문이 1일 보도했다.
개헌을 지지하는 이들은 '헌법 조문이나 내용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61%)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반대한 응답자들은 현행 헌법이 '전쟁 포기를 내걸어 평화가 유지되기 때문'(46%)이라고 반응했다.
응답자에게 국회가 헌법에 관해 논의하기를 바라는 주제를 3가지 선택하게 했더니 헌법 9조와 자위대의 존재 방식(43%), 대재해 발생 시 등 긴급사태 조항(38%), 교육 충실·무상화(35%)가 상위를 차지했다.
전쟁 포기, 전력(戰力) 비보유를 규정한 헌법 9조에 대해서 응답자의 50%가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반응했고 48%가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9조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안전 보장 환경이 크게 변했다'(74%)고 이유를 밝혔고, 필요 없다고 답한 이들은 '개정하면 헌법의 평화주의가 붕괴할 우려가 있다'(53%)고 반응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하기 위해서 개헌하는 방안을 찬성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자민당이 헌법 9조의 전쟁 포기, 전력 비보유를 유지하되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안을 내놓은 것에 대해 응답자 67%가 찬성했고 30%가 반대했다.
교도통신의 작년 여론조사에서 비슷한 질문에 찬성 답변이 56%였던 것과 대비된다.
◇ 개헌 지렛대 된 헌법 9조와 자위대 위헌 논란
일본 헌법이 평화 헌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은 전문에 "일본 국민은 항구(恒久)한 평화를 염원"한다고 평화주의 원칙을 제시하고 9조에서 이를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헌법 9조 1항은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이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9조 2항은 "전항의(1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해공군이나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규정과 관련해 논란의 대상이 됐던 것은 자위대다.
자위대는 방위를 위해 무력을 보유한 조직이다.
자위대법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지키고 나라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위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며 필요에 응해 공공의 질서 유지에 임하는 것"을 임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종 무기를 보유한 자위대가 전력에 해당할 수 있다는 논란은 계속 제기돼 왔다.
일본공산당은 자위대가 전력에 해당하며 위헌적인 조직이라고 규정해 왔다.
홋카이도 유바리의 항공자위대 미사일 기지 설치 예정 부지의 산림을 벌목할 수 있도록 일본 농림수산상이 1969년 일대의 안보림(保安林) 지정을 해제한 것에 반발한 주민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자위대의 위헌 여부가 관건이 됐다.
1심을 담당한 삿포로지방재판(법원)은 조직 편성, 장비, 능력 등에 비춰볼 때 자위대가 헌법 9조에서 보유를 금지한 전력에 해당하며 위헌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1973년 9월 내렸다.
하지만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파기됐고 1982년 9월 최고재판소가 주민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삿포로지방재판소의 판결은 일본 법원이 자위대를 위헌으로 규정한 유일한 판례로 알려져 있다. 비록 상급 법원에서 부정되기는 했으나 자위대의 존재 방식에 대한 논란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위대 위헌 논란은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 추진 세력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위헌 논란을 없애도록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의 존재를 명시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1954년 7월 1일 발족해 곧 창설 68주년을 맞이하는 현실 속 조직인 자위대를 부정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한 셈이다.
각종 재해나 사고 현장에서 구호 활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자위대는 일본인에게 꽤 친숙한 조직이기도 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위대는 일본인이 신뢰하는 조직으로 꼽힌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땀 흘리는 자위대를 '위헌 조직'이라는 불명예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유권자들에게 꽤 잘 먹히는 분위기다.
◇ 자민당 '자위대 명시' 제안…기시다 "헌법 시대에 안 어울려"
자민당은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반영하는 구상을 꾸준히 시도해 왔다.
야당 시절인 2012년 4월 발표한 헌법개정 초안에는 '국방군을 보유한다'는 내용으로 헌법 9조의 2를 신설하는 방안을 담았다.
자위대를 군대로 개편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자민당은 자위대를 그대로 반영하는 방안을 택한다.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는 2018년 3월 자위대를 명시한 개헌안을 발표했다.
현행 헌법의 9조 1항과 2항을 그대로 유지하되 자위대에 관한 설명을 담은 9조의 2를 추가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9조의 2는 현행 헌법 9조가 '우리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지키고 나라 및 국민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위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며, 이를 위해 실력(實力) 조직으로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내각의 수장인 내각총리대신을 최고의 지휘감독자로 하는 자위대를 보유한다'(1항)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2항은 '자위대의 행동 법률의 정하는 바에 따라 국회의 승인과 여타 통제에 복종한다'고 기술했다.
헌법 9조 개정에 대한 반발을 피하고자 이를 그대로 두고 자위대에 관한 내용을 덧붙이는 방식의 개헌을 꾀하는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헌법기념일(5월 3일)을 앞두고 1일 방영된 NHK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시행 75년이 된 (현행) 헌법에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앞서 자민당이 내놓은 자위대 명기 등 개헌안에 관해 "현대적인 중요 과제"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 '2024년 개헌안 발의·2025년 국민투표' 시나리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 상황이다.
일본 정치권은 우크라이나 사태 및 중국의 군사력 증강,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이 자국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하며 '적 기지 공격 능력'(혹은 '반격 능력') 보유 등 대응력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일련의 상황과 맞물려 일본 유권자의 개헌에 대한 거부감은 낮아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신문은 자민당은 올해 7월 실시될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전제로 2025년까지 향후 3년 사이에 개헌을 실현하겠다는 태세라고 전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개헌에 대해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으나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최근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제3당인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의 협력을 받아 개헌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참의원 선거 결과, 개헌 추진 세력이 의회의 3분의 2 이상을 유지하면 내년에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헌법심사회를 열어 2024년 개헌안 발의, 2025년 개헌 국민투표를 한다는 시나리오가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전체 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각각 찬성해야 한다. 국민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하면 개헌이 성사된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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