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열기 필리핀에선]② 마르코스 지지율 과반…"왕조정치 탓"
정치 평론가 나발 교수, 지역 명문가 '정계 지배'꼬집어…"젋은 세대가 바꿔야"
"선친 독재 과거 잊혀져…젊은층 대상 '소셜미디어 마케팅' 주효"
(마닐라=연합뉴스) 김범수 특파원 = "마르코스가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건 왕조 가문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필리핀국립대 정치학부 교수인 헤이메 나발은 다음달 9일 대선을 앞두고 독재자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64) 전 상원의원이 과반이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28일(현지시간) 이같이 설명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정치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나발 교수는 현지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는 우선 "필리핀은 아직까지도 이른바 '왕조 정치'가 만연해있기 때문에 마르코스 아들이라는 사실이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필리핀 정계는 지역의 유력 가문들이 좌지우지해왔다.
서구 및 현지 언론은 이같은 현상을 이른바 왕조 정치라고 지칭하면서 비판적 견해를 피력해왔다.
실제로 마르코스 가문의 경우 지난 1986년 시민 혁명인 '피플 파워' 이후에도 본거지인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에서 손꼽히는 재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현재 필리핀 전역에는 왕조로 분류되는 가문이 163개가 있다고 나발 교수는 말했다.
나발 교수는 "이들 가문은 상원과 하원의원을 비롯해 주지사 및 지방정부 요직을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면서 "주지사의 경우 현재 81개 자리 중 61개를 왕조 가문이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같은 왕조 정치는 부패로 연결되기 쉽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앞으로 젊은 세대가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민주시민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발 교수는 아울러 마르코스 독재 정권 치하에서 자행된 고문과 살해 등 암울한 과거에 대한 기억이 잊혀진 점도 마르코스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원인 중 하나로 들었다.
그는 "현재 마르코스를 지지하는 30대 이하의 젊은 유권자들은 그의 선친이 집권했을 당시의 부패와 인권탄압을 경험하지 못했다"면서 "이들은 36년전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미화되고 왜곡된 이야기에 노출돼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저비용·고효율의 선거 마케팅 전략도 주효했다고 나발 교수는 전했다.
나발 교수는 "마르코스 후보는 자신이 선친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소셜 미디어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면서 "예를 들어 자신의 애칭인 '봉봉'을 이용한 'BBM'(봉봉 마르코스)이라는 부르기 쉬운 선거용 호칭을 만드는 등 젊은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마르코스를 상대로 한 다른 경쟁 후보들의 일관된 비방전이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나발 교수는 "마르코스는 자신을 비난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다른 후보자들과 달리 '국가 통합'이라는 테마를 제시해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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