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사장 "원전, 탄소중립 실현 대안…추앙·신봉은 안돼"(종합)

입력 2022-04-27 22:44
한수원 사장 "원전, 탄소중립 실현 대안…추앙·신봉은 안돼"(종합)

원자력연차대회서 개회사…배포 자료와 달리 '톤다운'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에 앞장선 것으로 평가받는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원전을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 대안으로 치켜세웠다가 '톤다운'했다.

정 사장은 27일 원자력 관련 행사를 앞두고 배포한 사전 발언 자료에서는 원전 필요성을 부각했으나 실제 발언하면서는 원전을 일방적으로 신봉해서는 안되고 신재생 에너지 등과 함께 선택받을 수 있도록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정 사장은 이날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2 한국원자력연차대회' 개회사를 앞두고 미리 배포한 연설문에서 "기후 변화 극복을 위해 우리나라는 친환경·저탄소·분산형 에너지를 확대하고 있으며 특히 원자력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에너지원으로 탄소 중립 실현에 앞장서는 에너지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자력계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적극 대응하고 경쟁력을 키워 향후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전 안전 강화와 신성장동력 창출, 원전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과 사회적인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사장은 이날 실제 연설에서는 미리 배포한 개회사를 대폭 수정했다.

그는 "세상이 바뀌면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고리 2호기 계속 운전 등 여러 이야기가 많다"면서 출범을 앞둔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뒤 "원자력은 추앙이나 신봉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력은 우리 인간과 지구에 도움을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모든 에너지에 대한 기술 중에 선택받고 사랑받아야 한다"며 "선택받고 사랑받을 때 수용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자력은 혼자만 가서는 안된다. 다른 과학기술, 심지어 인류학이나 사회학이나 이런 인문사회학까지 합쳐져서 함께 움직이는 그런 과학이 돼야 한다"면서 "인류와 지구에 기여하는 원자력,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원자력,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넷제로를 앞당기는 원자력이 되길 기대한다"고 희망했다.

정 사장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원전이 여야간 정쟁의 대상이 된 상황에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해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 준비한 원고대로 하기보다 현장에서 연설 내용을 많이 고치는 편"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 출범 뒤인 2018년 4월 취임한 정 사장은 그동안 탈원전 정책 추진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시 경제성이 없는 것처럼 경제성 평가 결과를 조작하는 데 관여했다는 혐의 등으로 지난해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한편 한국원자력연차대회는 국내외 원자력 산업 전문가들이 모여 산업 현황과 향후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행사로, 올해는 800여명이 참석했다.

톰 그레이트렉스 영국 원자력산업협회(NIA) 회장은 '탄소중립을 위한 원자력 산업 대응전략'을 주제로 한 첫 번째 패널 세션에서 "영국은 탄소중립 세상 속에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전력 확보라는 도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원자력을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화상으로 발표에 참여한 테레스트리얼 에너지의 사이먼 아이리쉬 사장은 "SMR의 혁신은 '작은 크기'나 '모듈화 기술'이 아닌 4세대 원자로 기술을 통한 비용 절감을 토대로 고온 운전 및 저압 운전과 함께 고유의 안전성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 사용을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테라프락시스를 설립한 커스티 고건은 탄소를 배출하는 석탄과 액체연료 문제를 돌파할 대안으로 '선진 원자로'를 지목했다.

그는 "현재 전 세계가 2TW(테라와트) 이상의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하며 매년 약 12Gt(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이는 전 세계 총 연간 순배출량 추정치의 3분의 1에 달한다"면서 "2030~2050년 5천~7천개의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하려면 전력보급률을 충족할 수 있도록 전력공급모델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비용, 속도, 규모의 전력 공급을 위해 원자력 발전을 제고하는 것은 우리 산업에 동력을 제공하는 한편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전 세계적인 탄소 배출 누적량을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원자력을 이용한 전기 생산을 넘어 새로운 선진형 열원으로 탄소 배출이 없으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소 및 합성연료를 만드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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