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에 팔린 트위터, '감시의 고삐' 느슨해진 공론장 되나
"트위터서 여성·유색인종 등 취약계층 보호 퇴보할 수도" 걱정
'트위터 끝났다', '떠나자' 글도 올라와…직원들 엑소더스 우려도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세계 최대 부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소셜미디어 트위터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그동안 이 플랫폼에서 '건강한 대화'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구축해온 안전장치들이 와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6일(현지시간)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CNN 방송 등에 따르면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이자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잭 도시는 2018년 실적발표 행사에서 회사의 성장을 위한 4가지 핵심 영역을 제시하며 그중 하나로 건강한 대화의 증진을 꼽았다.
도시는 트위터가 해로운 공간으로 변하는 걸 제대로 막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욕설과 괴롭힘, 트롤(인터넷상에 공격적·도발적 글을 올리는 사람) 부대, 가짜 뉴스 확산 캠페인, 분열된 이념 지형 등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도시는 건강한 대화가 이뤄지는 환경 구축이 장기적인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며 전문가·연구자들을 통해 이런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트위터는 이후 증오를 조장하는 계정을 금지하고 가짜 뉴스·잘못된 정보 등에 라벨을 붙이는 등 건강한 환경 조성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절대론자'를 자처하며 이런 콘텐츠·게시물 규제를 완화하고 트윗과 계정을 최대한 그대로 놔두자는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이런 그간의 노력이 원점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트위터 직원들이 제기하는 핵심 우려가 바로 이 문제다.
WP는 직원들과의 인터뷰, 이들이 올린 트윗, 25일 열린 트위터의 전 직원 미팅 등에서 평범한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만든 안전장치를 머스크가 해제하려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트위터가 여성과 성 소수자(LGBTQ), 아시안·흑인 같은 유색인종 등 취약한 이용자들에게 더 쾌적하고 만족스러운 공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 기울여온 노력이 머스크의 지배 아래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머스크는 최근 글로벌 강연 플랫폼인 '테드(TED) 콘퍼런스'에서 "의구심이 든다면 (트위터에) 그 발언을 놔둬라"라고 말했다.
그는 "그게 회색 영역에 있다면 나는 그 트윗을 놔두라고 말하겠다"라며 "하지만 많은 논란이 있는 경우라면 그 트윗을 꼭 널리 알릴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증오 발언이나 폭력을 선동·미화하는 트윗 등에 대한 감시의 고삐가 느슨해지면 이런 증오·폭력의 표적이 되기 쉬운 여성·유색인종 이용자들은 트위터를 떠날 수 있다.
이미 트위터에는 이 플랫폼을 떠날 사람을 위해 공유한다며 '트위터 아카이브와 트윗을 내려받는 법'을 올리거나, 텀블러(tumblr) 같은 대체 소셜미디어로 옮겨가자는 호소글이 올라오고 있다.
해로운 콘텐츠 옆에 나란히 자사 광고가 나가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광고주들은 트위터에 냉담해질 수 있다.
노터데임 멘도자칼리지의 키어스틴 마틴 교수는 트위터가 콘텐츠 감시 문제 대처에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일관되게 책임 있는 소셜미디어 기업이 되려고 분투했다고 지적했다.
마틴 교수는 "이번 인수가 트위터의 가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직 트위터 매니저였던 레슬리 마일리는 "누군가 표현의 자유를 말할 때는 이는 항상 힘 있는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뜻한다. 권력을 덜 가진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뜻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마일리는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아무 책임 없이 말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머스크는 빈번하게 논란의 소지가 있는 트윗을 올렸다.
2018년에는 "테슬라를 주당 420달러에 비상장 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자금은 확보됐다"는 트윗을 올려 미국 증시를 뒤흔들었다.
이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 사안을 조사한 뒤 머스크를 증권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또 같은 해 태국의 동굴에 갇힌 소년들을 구조하는 데 나섰던 영국인 잠수 전문가를 소아성애자, 아동 강간범 등으로 비방하기도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한 밈(meme)을 올렸다가 삭제했고, 마리화나나 성관계, 여성의 신체 부위를 암시하는 농담도 빈번하게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는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이 치료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거나, 현재 추세를 봤을 때 신규 확진자가 곧 거의 0에 가까워질 것이란 잘못된 주장을 트윗에 올리기도 했다.
캐라 얼라이모 호프스트라대학 로런스허버트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는 이번 인수가 트위터의 수명이 다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얼라이모 부교수는 트위터에 여성 혐오나 타인에 대한 증오 같은 해로운 형태의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실제로는 많은 사람을 침묵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왜냐하면 사려 깊은 이용자라면 자신이 욕설·모욕의 세례를 받는 플랫폼을 계속해서 자발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트위터를 이탈하는 첫 번째 집단은 희생자 쪽인 여성과 유색인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위터 내에서도 직원들의 엑소더스가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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