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가족 아우성에…침몰 전함 인명피해 마지못해 인정한 러
체르노빌·쿠르스크 핵잠 침몰 때처럼…'침묵·부인·축소' 전철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피해 장병 가족들의 거친 반발 속에 러시아가 22일(현지시간)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함' 폭파 사고의 인명피해를 처음 인정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국영 통신사 등을 통해 배포한 성명에서 "모스크바함의 생존을 위한 사투 중에 장병 1명이 전사하고, 27명은 실종됐다. 나머지 396명은 대피했다"고 밝혔다.
달랑 네 문장짜리 성명에서 러시아는 지난 13일 사고 직후 '전원구조'를 주장했던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폭발의 원인에 대해서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열흘 전인 13일 모스크바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러시아 국방부는 화재가 원인이라며 승조원은 모두 구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자국군이 쏜 우크라이나산 미사일 '넵튠'이 모스크바함에 명중했다면서 격침설을 주장했고, 서방 정보 당국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러시아는 사고 발생 이후 줄곧 구체적인 피해 상황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껴왔다.
지금까지 모스크바함의 상태나 장병 구조작업을 보여주는 동영상이나 사진이 공개된 적도 없다.
모스크바함과 관련해 공개된 영상 자료는 장병들이 크림반도의 항구에서 모스크바함 사령관의 사열을 받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전부였다. 이 영상으로는 얼마나 많은 장병이 안전하게 대피한 건지 알기가 어려웠다.
러시아는 대형 인명피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구체적인 상황을 알리기보다 사고 자체를 부인하거나 피해를 축소하며 쉬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전형적인 전철을 밟았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AP통신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참사, 1994∼1996년 체첸 전쟁, 2000년 핵잠수함 쿠르스크함 침몰사고 등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이번 사고에 대해 러시아가 이만큼이나마 피해 사실을 인정한 데에는 피해 장병 가족들의 격렬한 항의도 일부 역할을 했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들이 모스크바함에서 조리원으로 복무했다는 한 남성은 러시아 소셜미디어 VK에서 "'전원구조'는 러시아군의 뻔뻔하고 이기적인 거짓말"이라며 "모스크바함 사령관 본인이 말했다. 내 아들은 부상자, 사망자 명단에 없다고 했다. 아니 망망대해에서 무슨 실종인가"라고 말했다.
AP통신은 각기 다른 모스크바함 승조원 아들을 찾는 피해 가족들의 소셜미디어 게시글을 다수 확인했다고 밝혔다.
AP통신과 인터뷰한 한 익명의 피해 가족은 "아무도 연락을 주지 않아 군에 연락을 돌렸다. 나중에서야 아들이 실종자에 포함됐으며 생존 확률이 희박하다고 알려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P통신은 피해 가족 측 주장의 진위를 모두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러시아 국방부 측도 별다른 반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러시아 측이 인정한 피해 규모가 축소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불가리아의 한 탐사보도 전문가는 "바다에서 27명이 실종됐다고 한다. (사망자 1명을 포함하면)사실상 28명이 전사했다는 것인데 (그 숫자 역시) 모스크바함의 큰 피해를 고려하면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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