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Eye] 1천년여 역사 여왕 임명 고등 보안관에 첫 한국계

입력 2022-04-24 07:00
[런던 Eye] 1천년여 역사 여왕 임명 고등 보안관에 첫 한국계

로빈후드에도 등장, 지금은 명예 봉사직…정수미씨 "한국 예술가 소개할 것"

전국 55명 1년 임기…경찰·사법부 등 지원, 지역 아동병원 건립 홍보



[※ 편집자 주 : '런던 Eye'는 런던의 랜드마크인 대관람차의 이름이면서, 영국을 우리의 눈으로 잘 본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영국 현지의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소개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왕을 대리해 세금을 걷고 법질서를 유지하며 큰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이제는 명예 봉사직이 된 영국의 고등 보안관(High Sheriff)에 한국계가 선정됐다.

정수미(영국명 제니퍼 크롬프턴·Jennifer Crompton)씨는 이달 9일 케임브리지셔 지역의 고등 보안관으로서 선서하고 활동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정씨는 23일(현지시간) 전화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영국 전체에서 첫 한국 출신 보안관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 보안관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모두 55명이 있으며 임기는 1년이다.

정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5세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매사추세츠주의 케임브리지 인근에서 자랐으며, 동부 명문 웰즐리대와 뉴욕의 브루클린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로 일했다.

영국인 남편은 뉴욕에서 만났으며 홍콩을 거쳐 영국에 정착한 지 이제 20년이 넘었다.

1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보안관은 영국의 지역 단위인 셔(Shire)와 과거 지방행정관을 뜻한 말인 리브(Reeve)가 합쳐져서 생긴 말로 알려졌다.

로빈후드 이야기에서 의적 로빈후드가 싸우는 주요 악당이 노팅엄 지역의 보안관(Sheriff)이다. 우리 말로는 영주나 주장관 등으로도 소개되고 조선시대 사또의 역할과도 비슷하다.

미국 서부 영화에 나오는 보안관 제도도 영국에서 건너간 것이다.



보안관은 11∼12세기에 권한이 상당했지만 이제는 경찰과 사법부를 지원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무보수 명예직으로 남았다.

영국에서 왕의 실질적 권한이 점차 축소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1천215년 체결된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에서 63개 조항 중 27개 이상이 보안관의 역할과 관련된 것이기도 했다.

과세, 사법 분야 등에서 왕의 권위를 문서로 처음 제한하며 왕이 법 안에서 통치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수립한 마그나 카르타는 영국 자유와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여겨진다.

보안관은 2003년까지만 해도 법원 영장 집행 등과 관련해 법적 기능이 있었다.

이 때문에 고등 보안관은 법적 기능을 수행할 일반 보안관(Under Sheriff)으로 변호사를 뽑았다. 지금은 그런 기능은 없지만 전통은 대체로 지켜진다.

이번 선서 행사도 가발을 쓰고 빨간 예복을 입은 고등법원 판사가 주재했으며 역시 가발을 쓴 지역 판사와 경찰서장 등도 참석했다.



고등 보안관의 복장은 18세기 중반 이후로 비슷하게 유지되는데 검정이나 진한 파란색 벨벳 겉옷, 하얀 나비넥타이나 주름장식, 버클이 있는 구두, 검, 모자 등으로 구성돼있다. 여성들은 이에 맞춰 응용을 한다.

고등 보안관은 전임자가 추천한 뒤 위원회 등을 거쳐 뽑힌다. 결정이 되면 '여왕이 (국왕을 위한 자문단인) 추밀원 조언에 따라 고등 보안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기쁘게 여긴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는다.

고등 보안관 내정자들을 여왕의 버킹엄궁 가든 파티에 초청되는데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 때문에 행사 자체가 안 열렸다.

정수미씨는 고등 보안관으로 선정된 배경에 관해 지역 사회와 교육·아동 단체 봉사, 예술지원 기관 활동이 인정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영국 밖에서 나고 자란 점이 고등 보안관이란 역할에 새로운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선서 행사에서도 "한국인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영국 내 남북 여성들이 한반도 평화와 화합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민주평통 영국협의회와 주영한국대사관 공동주최 '제2차 남북출신 동포 평화포럼'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임기 중에 한국 예술인들을 지역에 적극 소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첫걸음으로 런던 유명 해로즈백화점에도 진출한 한국계 디자이너 에들린 리와 협업해서 예복을 제작했다. 정씨는 "한국어 실력도 늘리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역 경찰과 사법부를 지원하는 한편 케임브리지 아동 병원 건립 사업을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지역의 대영제국 메달 수여식에 참석할 예정이고 6월에 개최되는 여왕 70주년 기념식(플래티넘 주빌리) 관련 지역행사에 초대받았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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