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문화 전선'에서 분투하는 우크라 예술가들
베네치아 비엔날레 우크라이나 광장에 투지 가득
국가 정체성·전쟁의 아픔 등 다룬 저항작품 빼곡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세계적 권위의 현대 미술축제인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이 '문화 전선'에서 싸운다는 생각으로 행사에 임하고 있다고 영국매체 가디언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비엔날레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예술가 파블로 마코우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문화를 없애버릴 생각이다. 문화가 없다면 우크라이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문화,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5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하리코프)의 홍수로 수주일간 단수됐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소진의 샘'을 전시하고 있다. 이는 78개의 청동 깔때기를 피라미드 형태로 설치하고 물이 흐를 수 있게 한 작품이다.
마코우의 팀은 비엔날레 주 행사장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광장' 구성 작업도 하고 있다.
마코우는 개전 초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방공호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 가족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면서 "우크라이나를 대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비엔날레에서는 '이것이 우크라이나다'를 주제로 한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전시회장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시키는 파랑·노랑 현수막 위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리는 자유를 방어하고 있다'고 쓴 글씨를 프린트해 전시하고 있다.
전시회에서 한 작가는 개전 후 40일간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자택에서 머물며 기록한 일기와 촬영한 사진을 선보이고, 또 다른 화가는 일반인이 군인이 되는 상황을 묘사한 대형 그림들을 전시한다.
2014년부터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반군 간 돈바스 지역 충돌과 현재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잔해 속에서 모은 금속을 이용해 만든 설치작품도 있다.
전시회의 한쪽 벽면에는 2014년 충돌로 전사한 군인의 어머니를 촬영한 사진 300여장이 있고, 영국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기증한 파랑·노란색 나비 그림도 걸려있다.
키이우의 핀추크 아트센터 관계자는 "문화 전선도 전선"이라면서 "군인들이 매일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군인이 아니지만 우리 모두 임무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이번 비엔날레에서 러시아 측의 작품 전시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한편 음악 분야에서는 키이우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처음으로 21일 인접국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공연한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오케스트라는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주제로 독일 드레스덴·베를린·함부르크 등에서 유럽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현재 전투가 가능한 성인 남성의 출국이 금지된 상태지만, 오케스트라의 남자 단원들은 당국의 특별 허가를 받아 국외로 나왔다.
한 단원은 "우리의 공연은 진정으로 문화적 임무"라면서 "우크라이나에서는 '문화 전선'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전쟁의 다른 측면이라는 의미"라고 말하기도 했다.
단원들은 "힘든 영혼을 치유하고 우크라이나 문화를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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