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 승인 새 '면역 관문' 억제제, 항암 효능 더 세질 수 있다
LAG 3 '면역 관문' 작동 메커니즘 처음 밝혀져
현재 항암제 표적인 '2형 MHC' 없어도 T세포 활성화 억제
미국 피츠버그 의대 연구진, 저널 '네이처 면역학'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T세포는 암세포를 제거하고 바이러스 감염 등에 맞서 싸우는 면역계의 특급 공격수다.
T세포가 전쟁에 투입되려면 먼저,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체나 암세포 등의 항원을 T세포 수용체가 식별해야 한다.
그런데 암이나 만성 질환과의 싸움이 너무 길어지면 T세포가 탈진해 이런 항원제시세포(APC)와 잘 결합하지 못한다.
자동차의 브레이크처럼 작용하는 '면역 관문 단백질'(immune checkpoint protein) 탓에 면역 반응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효능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PD-1이나 CTLA-4 면역 관문을 봉쇄하는 항암제가 나온 지는 10년이 넘었다.
최근엔 LAG 3이라는 면역 관문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지난달 진행 단계의 흑색종(advanced melanoma)에 쓰는 용도로 LAG 3 억제제를 처음 승인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18종의 LAG 3 억제제도 임상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LAG 3 면역 관문이 T세포 기능을 어떻게 억제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 피츠버그대 과학자들이 마침내 이 문제를 풀어냈다. LAG 3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상세히 밝혀낸 것이다.
이 발견은 장차 새로운 LAG 3 억제제를 개발하는 연구자에게 중요한 통찰이 될 거로 보인다.
피츠버그 의대의 다리오 비그날리 면역학 석좌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18일(현지 시간) 저널 '네이처 면역학'(Nature Immunology)에 논문으로 실렸다.
FDA 승인까지 났지만, 사실 LAG 3 면역 관문의 작동 원리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인 비그날리 교수는 "잠정적인 면역조절 표적으로서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됐지만, 지금까지 LAG 3는 열지 못한 블랙박스였다"라면서 "이번 연구는 구체적인 작용 메커니즘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T세포는 항원제시세포와 결합할 때 일종의 '접점'(contact point)을 만든다.
T세포 수용체가 몰려드는 이 접점을 학계에선 '면역학적 시냅스'(immunological synapse)라고 한다.
연구팀은 LAG 3도 T세포 수용체와 결합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런데 LAG 3는 T세포 수용체를 직접 억제하지 않고 '면역학적 시냅스'로 옮겨가는 데 이용했다.
LAG 3가 면역학적 시냅스에 집결하면 산성이 강해져 '공<共>수용체'(coreceptors)와 LcK라는 신호 효소의 만남이 교란됐다.
그렇게 되면 T세포 활성화와 T세포 신호 방출의 핵심 요건이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
여기서 공수용체는 '도움 T세포'(helper T cells) 표면의 CD4, '세포 독성 T세포'(killer T cells) 표면의 CD8 같은 걸 말한다.
현재의 LAG 3 억제제는 LAG 3과 2형 MHC(주조직 적합성 복합체)의 상호작용을 막는 것이다.
MHC는 단백질 분자를 세포 표면에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면역계의 주 공격수인 T세포와 NK(자연 살해)세포는 MHC 복합체를 보고 암세포, 바이러스 감염 세포 등을 공격 표적으로 식별한다.
MHC는 1형과 2형 두 가지가 있는데 항원제시세포 표면엔 2형 MHC가 나타난다.
지금까진 2형 MHC가 LAG 3 면역 관문의 작동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LAG 3가 2형 MHC의 존재와 상관없이 T세포의 활성화를 억제한다는 게 이번 연구에서 처음 밝혀졌다.
이는 FDA 승인이 떨어진 것을 포함해 현재의 LAG 3 억제제가 최상으로 디자인되지 않았다는 걸 시사한다.
LAG 3는 이런 면역 항암제의 표적인 2형 MHC가 없어도 T세포의 활성화를 막기 때문이다.
비그날리 교수는 "이제 LAG 3가 T세포 수용체와 결합한다는 걸 알았다"라면서 "이 상호작용을 표적으로 삼아 최적의 LAG 3 억제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가 꼭 암 치료제 개발에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과잉 면역반응으로 생기는 자가면역 질환과 염증 질환 등에도 새로운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단, 이런 질환엔 LAG 3 활성화를 차단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촉진하는 약을 써야 한다는 게 다를 뿐이다.
암과 싸울 땐 면역계에 걸린 브레이크를 풀어야 하지만, 자가면역 질환을 고치려면 브레이크를 더 세게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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