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시아정교회 수장 전쟁 두둔에 분열되는 동방정교회
"서구 재앙서 러 보호" 키릴 총대주교 발언에 곳곳서 반발
교회 옮기고 결별 청원…신자들 의견 충돌도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톨릭 교단 가운데 로마 가톨릭에 이어 두번째로 교세가 큰 동방정교회가 내홍을 겪고 있다.
동방정교회에서도 가장 큰 교파인 러시아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가 전쟁을 지지하는 발언을 내놓자, 전세계 동방정교회 곳곳에서 러시아 총대주교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는 등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미사 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발언들을 내놨다. 이번 전쟁을 동성애 같은 '서구의 재앙'으로부터 러시아를 보호하는 성스러운 투쟁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러시아가 적그리스도와 싸우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또 러시아군의 축복을 기원하는 한편 민간인 피해를 낳은 공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를 계기로 신자들이 러시아 정교회와 키릴 총대주교와의 관계를 재평가하면서 총대주교청과 결별하거나 교구, 심지어 가족들까지 분열시키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우디네에 있는 러시아정교회 교구는 키릴 총대주교와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했다. 이 교구의 신자 대부분 우크라이나인이다.
이 교구의 볼로디미르 멜니추크 대주교는 지난달 31일 모스크바 총대주교청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미국에서는 일부 신자들이 교회를 옮기고, 프랑스에서는 정교회 신학생들이 주교에게 모스크바 총대주교청과의 결별을 요청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교회에서는 교구민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몸싸움을 벌여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키릴 총대주교와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배척하느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고, 바르톨로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키릴 총대주교를 비판했다.
바르톨로뮤 동방정교회 총대주교는 "정교회는 전쟁, 폭력, 테러리즘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키릴 총대주교가) 정교회 전체의 위신을 깎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내 45개 교구 중 22개 교구에서는 미사 중 키릴 총대주교 언급을 중단했다고 러시아의 한 종교학자가 전했다. 교구민 약 2만명에 달하는 규모다.
이는 공식적인 관계 단절과는 거리가 있지만, 러시아와의 결별로 가는 첫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안에서도 여전히 많은 주교가 총대주교청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많은 신자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NYT는 전했다.
한 우크라이나 신부는 "평범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눈을 쳐다보는 것도 부끄럽고, 키릴 총대주교가 하는 끔찍하고 공격적인 말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우크라이나인들은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잃는 것은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안에서도 약 300명의 성직자가 전쟁에 반대하는 탄원서에 서명했고, 리투아니아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성직자 3명이 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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