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뽑자' 대신 '르펜 뽑지말자'…달라진 프랑스 공화국전선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프랑스에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극우 세력의 집권 저지라는 목표 아래 이념을 초월해서 정치 세력을 하나로 묶어주는 현상을 '공화국 전선'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에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래 올해 대선만큼 극우 세력이 엘리제궁에 가까이 다가선 적이 없지만 좌파는 물론 우파에서도 공화국 전선이 무너졌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다.
대선 결선 대진표를 확정하고 맞이하는 첫 주말 파리와 마르세유 등에서 열리는 시위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임을 지지하는 구호가 없었다는 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위에서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지만, 이것이 마크롱 대통령을 위한 한 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파 진영에서는 "공화국 전선은 죽었다"(스테판 르뤼뒬리에 공화당 상원의원)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등 결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 그 누구에게도 표를 주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 그래도 마크롱 대통령을 우파 정치인으로 보고 있는 좌파 진영에서도 르펜 후보도 싫지만, 우파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우위에 두고 펼치는 마크롱 대통령도 싫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와 피뒤시알이 15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사이에서 기권하겠다는 응답이 늘고 있다.
1차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 멜랑숑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중 결선에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가 진출한다면 기권하겠다는 응답이 4월 12일 37%, 13일 41%, 14일 45%, 15일 49%로 나날이 증가했다.
입소스와 소프라 스테리아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멜랑숑 후보를 뽑은 유권자 사이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가 맞붙는 결선에서 기권하겠다는 응답이 13일 45%, 14일 49%, 15일 56%로 상승했다.
멜랑숑 후보의 1차 투표 득표율은 27.95%로 2위를 차지한 르펜 후보(23.15%)와 1.2%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마크롱 대통령은 물론 르펜 후보 입장에서도 그를 지지한 유권자를 흡수하는 게 관건이다.
Ifop-피뒤시알 기준 우파 공화당(LR)의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결선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뽑겠다는 응답이 40%, 르펜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27%, 기권하겠다는 응답이 33%로 나타났다.
입소스-소프라 스테리아 조사에서는 페크레스 후보를 뽑은 유권자의 55%가 결선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18%가 르펜 후보를 뽑겠다고 답했고 나머지 27%는 기권하겠다고 밝혔다.
기관마다 편차는 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의 득표율 예상치 격차는 6%포인트∼12%포인트로 집계돼 격차가 5년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공화국 전선의 위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징후는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가 처음 맞붙었던 2017년 대선 결선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의 득표율은 66.10%로 르펜 후보 득표율(33.90%)의 약 두 배였지만, 2002년 대선 결선 결과와 비교하면 공화국 전선의 결속력이 약해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2002년 대선에서는 우파 성향의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이 연임에 도전했고, 르펜 후보의 아버지이자 원조 극우의 아이콘인 장마리 르펜 후보가 극우 후보로서 처음으로 결선에 진출했다.
1차 투표에 시라크 전 대통령과 장마리 르펜 후보의 득표율은 각각 19.88%, 16.86%로 3.02%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으나, 2차 투표에서는 82.21%, 17.79%로 4배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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