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반도 빙붕 붕괴 60%는 '대기천' 현상 때문"
프랑스 연구팀 2000년 이후 빙붕 붕괴 분석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남극 대륙에서 발생한 빙붕 붕괴 사건의 60%는 '대기천'(atmospheric rivers) 현상 때문에 일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미국 CNN 방송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대학 조너선 윌 교수팀은 이날 과학저널 '커뮤니케이션스 어스 & 인바이런먼트'(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서 알고리즘과 기후모델, 위성 관측 자료 등을 분석, 남극반도의 거의 모든 극한 고온 사건들이 대기천 현상 때문에 촉발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대기천은 다량의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대기 중에서 강처럼 긴 띠 형태로 움직이는 현상으로 따뜻한 공기와 수증기를 열대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수송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남극 기온이 평시 온도보다 38도가량 치솟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시 크기의 빙붕이 떨어져 나오자 과학계에서는 대기천 현상을 통해 전달된 열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가설이 제기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남극 대륙과 만나 비와 눈을 쏟아부은 대기천이 극한 고온 현상과 표면 융해, 해빙(sea ice) 붕괴, 바다 팽창으로 인한 빙붕의 불안정 등을 유발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이런 조건들은 1995∼2002년 여름철에 남극반도에 있는 라르센A와 라르센B 빙붕이 붕괴했을 때도 각각 관측됐던 현상들이라며 지구 온난화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남아 있는 가장 큰 빙붕인 라르센C도 붕괴 위험을 맞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빙붕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라르센 A·B·C 빙붕은 모두 습기가 많고 차가운 공기가 높은 산을 넘으면서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으로 변하는 '푄 바람'(foehn wind)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푄 바람이 불면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남극대륙 얼음이 녹고 빙붕 붕괴 등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또 해빙이 녹으면 빙붕이 팽창하는 바다에 노출돼 더욱 불안정해질 수 있다.
윌 박사는 "이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매우 강력한 대기천 현상이 이런 다양한 현상들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라르센C가 붕괴하면 해수면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겠지만 빙붕 자체가 바다에 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상승 폭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빙붕은 빙하가 바다로 밀려 내려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빙붕이 사라지면 빙하가 녹아 바다로 밀려 내려오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해수면 상승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학자들은 대기천 현상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는 아직 불명확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남극의 폭염과 이상 기후가 극심해지면서 기후위기가 이런 현상에 한몫했을 수 있다는 가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줄리엔 스트로브 교수는 "문제는 대기천 현상이 기후 변화에 따라 더 자주 발생할 것이냐는 것"이라며 "그에 대한 답을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또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영국 남극 연구소(BAS)의 존 터너 박사도 남극 빙붕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대부분 바닥이 녹기 때문이라며 빙붕 붕괴의 원인으로 대기천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천이 몰고 온 따뜻한 바람이 빙붕 붕괴에 결정타가 됐을 수는 있다"면서 "하지만 기후와 관련된 극단적인 사건들의 원인에는 대기천 현상에 따른 것들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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