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시아 압박 국제 포위망에 개도국이 '구멍'
브릭스·남미 미국 주도 제재에 미온적…러·중과 경제관계 고려
'냉전' 피해 경험에 강대국간 충돌에 휘말리지 않으려 해
(서울=연합뉴스) 강병철 기자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겨냥해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경제 제재로 '포위망'을 쳤지만 개발도상국이 이에 동참하지 않으려 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인 대표적인 진영은 브릭스(BRICS)다.
이 경제 블록엔 러시아를 비롯해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5개국이 속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유럽을 방문하기 직전 브릭스 국가 대사들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과 만나 협력을 논의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 자리에서 러시아가 전례없는 경제 전쟁의 희생자라고 항변했다. 회의에 참가한 어떤 나라도 러시아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은 러시아를 서방과 대결하는데 필요한 '반서방 동맹'으로 본다. 두 나라 모두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해체하고 지역적 패권에 주력한다.
WSJ는 중국이 이번 전쟁으로 선택을 강요받는 개도국의 대변자로 역할한다고 해석했다.
일부 개도국이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이유로 러시아에 대한 비판과 제재에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브라질 철광석과 아르헨티나 대두를 수입하는 중국은 대부분의 남미 국가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 교역국이 됐다. 중국과 아프리카간 무역도 지난해 전년 대비 35%가 증가한 2천540억달러(약 312조원)를 기록했는데 이 역시 미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중국과 국경에서 분쟁을 벌이는 인도는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중국과 더 밀접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인도는 무기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한다. 지난해 12월 러시아제 방공미사일 S-400 구매계약을 맺었고 러시아제 돌격 소총 AK-203 60만정 이상을 인도에서 생산하는 합작회사 설립에도 합의했다.
인도 외무장관은 최근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미국, 영국과 만났는데 비슷한 시기에 라브로프 장관과도 만나 러시아산 석유 구매 대금을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지급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러시아 요구대로 루블화 결제가 진행되면 서방의 제재를 피할 수 있다.
인도는 최근 대폭 할인된 가격에 수백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샀다.
일부 개도국에서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따른 에너지와 식량난을 악영향도 우려한다.
이번 전쟁을 유럽 문제로 보는 개도국도 있다. 과거 미소 냉전 때 비동맹 운동 블록을 만들기도 했던 국가들은 강대국 싸움에 끼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WSJ는 보도했다.
브라이언 윈터 '아메리카스 쿼털리' 편집주간은 "이번 싸움이 강대국 간 대립의 시대로 발전한다면 대부분의 남미 국가는 가만히 지켜볼 것"이라면서 "냉전 때 남미 지역이 체스판으로 사용됐는데 그 결과가 끔찍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개도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벌인 미국 역시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한 역사가 있는 만큼 제재를 '이중 잣대'로 여기기도 한다.
유엔 회원국 가운데 24개국이 7일 유엔총회에서 러시아를 인권이사회에서 퇴출하는 데 반대하고 58개국이나 기권한 것도 이런 이유로 분석된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부 장관은 이 회의에서 "현 상황이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우리 입장은 평화를 원한다는 것"이라면서 "인도의 외교 정책은 국익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남아공, 앙골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국가는 소수 백인 지배 구조를 바꾸거나 독립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것도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라고 WSJ는 설명했다.
이 때문에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 따른 부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와 한국, 일본, 호주와 같은 미국 동맹국이 지고 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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