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대통령 코앞에 시위 텐트촌 등장…정권 퇴진 운동 거점
음악인, 공연으로 시위대 격려…기부 물품도 몰려
정부, 경제난 속 일시적 디폴트 선언…세계은행은 긴급 의료 지원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최악의 경제난 속에 정권 퇴진 요구가 거세지는 스리랑카에서 대통령 집무실 앞 텐트촌이 시위의 거점으로 떠올랐다고 뉴스퍼스트 등 스리랑카 언론과 외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이 최근 수도 콜롬보의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수십개의 텐트를 설치했다.
이들은 텐트촌의 이름을 '고타-고-감마'(Gota-go-Gama)로 지었다. 고타는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에서 따온 말이고 감마는 현지어로 마을을 의미한다. 대통령은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뜻인 셈이다.
콜롬보대의 사회학과 교수인 파르자나 F. 하니파는 이 시위 장소는 좀처럼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던 스리랑카인이 모두 모일 수 있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텐트촌은 단순한 숙소 역할을 넘어 시위 정신을 공유하고 확산하는 장소가 됐다는 평가다.
음악인들은 자원해서 텐트촌 공연을 펼치며 시위대를 격려하고 있고, 물과 음식 등 기부 물품도 몰린다. 화장실은 물론 간이 도서관과 상점까지 설치,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마힌다 라자팍사 총리 형제 등 라자팍사 가문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경제가 엉망이 됐다고 지적한다.
관광 산업 의존도가 높은 스리랑카 경제는 2019년 '부활절 테러',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가 겹치면서 무너졌다.
외화가 없어 석유, 의약품 등 생필품마저 사 오지 못하는 지경에 처했다. 특히 의약품 부족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시급하지 않은 수술이 연기되는 등 의료 시스템도 붕괴 위기에 처했다.
결국 정부는 전날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지원) 협상이 마무리되고 포괄적인 채무 재조정이 준비될 때까지 대외부채 상환을 잠정 중단한다"며 일시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텐트촌의 한 젊은이는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며 "이 정치인들에는 질릴 대로 질렸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결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콜롬보 등 전국 곳곳에서는 연일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중이다.
전날 텐트촌 인근에서는 천주교 수녀와 불교 승려까지 시위에 가세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다만, 전반적인 시위 양상은 유혈 충돌 사태로까지는 번지지 않는 등 극단으로 치닫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라자팍사 정부는 야당에는 거국 중립내각 구성을 제안하며 민심 수습에 나섰고, 경제난 타개를 위해 인도, 중국 등으로부터 긴급 자금도 동원하고 있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공식 협상도 다음 주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스리랑카의 경제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세계은행(WB)도 긴급 지원에 나섰다.
알리 사브리 스리랑카 재무부 장관은 전날 "세계은행이 다음 주까지 필수 의약품 구매를 지원하기 위해 1천만달러(약 12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며 "이는 충분한 금액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을 고려할 때 큰 규모"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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