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한은총재 없는 금통위, 기준금리 올려 인플레 진화나서나
4%대 물가·미국 '빅 스텝' 부담, 새정부 정책공조 등에 인상 가능성 커져
총재 공석, 경기 하강 우려 등에 동결 전망도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이지헌 김유아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오는 14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다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올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0일 경제 전문가들과 시장에서는 4%를 넘어선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예상보다 빠른 긴축 가능성, 새 정부와의 정책 공조 등을 고려해 금통위가 미루지 않고 기준금리를 바로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소 우세하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한은 총재(금통위 의장) 공백 속에 나머지 6명의 금통위원이 기준금리를 일단 동결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경기 충격과 연준의 인상 속도 등을 좀 더 지켜볼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 역대급 인플레 압력…10년여만의 4%대, 기대인플레도 약 8년만에 최고
인상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무엇보다 최근 물가 동향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무려 4.1% 뛰었다. 4%대 상승률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더구나 이런 물가 급등세가 단기간에 진정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은은 지난 5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유, 곡물 등 원자재가격 상승 영향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4%대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연간 상승률도 한은의 기존 전망치(3.1%)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1일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도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 관련 질문에 "상반기의 경우 부득이하게 한은의 예상(3.1%)보다 높아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한은의 3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 값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2.9%에 이르렀다. 한 달 새 0.2%포인트 또 올랐는데, 2014년 4월(2.9%) 이후 7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심각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물가안정을 제1 목표로 삼는 한은으로서는 방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미 지난 2월 24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도 대다수 금통위원은 물가 급등 등을 근거로 향후 기준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위원은 "국내경제의 성장, 물가, 금융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더욱 축소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특히 물가 경로의 상방 위험이 인플레이션 기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과 정책 시차를 고려할 때 선제 대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물가 최우선' 새 정부와 정책 공조, 미국 '빅 스텝' 가능성도 부담
새 정부와의 정책 공조 측면에서 금통위의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관측도 있다.
앞서 6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물가를 포함한 민생안정 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지시한 바 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금통위가 이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이라며 "4%대 물가 충격에 대응할 뿐 아니라, 윤 당선인과 인수위가 물가안정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언한 만큼 정책 공조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연준의 이른바 '빅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커진 점도 변수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의 회의 참석자들은 "특히 인플레이션 압력이 올라가거나 강해진다면 향후 회의에서 한 번 이상의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연준이 5월 이후 FOMC 회의에서 잇따라 두 차례만 0.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높여도 두 나라 사이 기준금리 격차는 현재 0.75∼1.00%포인트 한국이 높은 상태에서 미국이 우위인 상태로 수개월 사이 역전될 수 있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만약 기준금리 등 정책금리 수준이 미국과 같거나 높더라도 차이가 크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기조적 달러가치 상승과 원화가치 하락이 예상된다는 점에서도 적정 수준의 기준금리 격차 유지는 중요하다.
이 후보자도 최근 한미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속도가 빠를 것이기 때문에 격차가 줄어들거나 역전될 가능성은 당연히 있다"며 "반드시 자본이 금방 유출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금리 격차가 커지면 원화 가치가 절하될 텐데, 그것이 물가에 주는 영향을 조금 더 우려하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008560]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하면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로 올라섰고, 정치권도 물가 상승을 민감하게 바라보는 분위기"라며 "더구나 미국 외 유럽, 호주 등 주요국 중앙은행마저 긴축을 고려하는 상황"이라고 인상 전망 근거를 설명했다.
◇ 동결론 "경기충격·이자부담·총재공석 등에 인상 서두르지 않을 것"
하지만 경기 하강 우려, 총재 공석 등을 이유로 기준금리 동결을 점치는 전문가들도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적 요인만 보자면 동결 결정을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너무 커졌는데,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고 해도 물가 안정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히 경기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물가 상승이 금리로 조절할 수 있는 수요측 요인이 아니라 전쟁, 공급차질, 임금 등 비용과 생산측 요인의 인플레이션인만큼 성급한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는 잡지 못하고 자칫 경기 하강만 부추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지난 2월 내놓은 수정 경기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3.0%로 유지했지만, 이 예상의 전제에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면 무력충돌 사태가 반영되지 않았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와 대출금리 상승 속도가 빨라지면 자영업자나 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의 이자 상환액이 불어난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은도 최근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앞으로 완화적 금융 여건이 정상화되는 과정(금리 인상 등)에서 대내외 여건까지 악화할 경우, 취약차주의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그동안 대출을 크게 늘린 청년층과 자영업자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이 오는 19일로 잡혀 이번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가 사상 처음 의장(한은 총재) 공석 상태에서 열린다는 사실도 동결의 근거로 거론되고 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동결을 전망하면서 "총재가 아직 취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다"며 "총재가 취임 후 (기준금리 방향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시그널(신호)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릴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FOMC 회의가 5월에 열리는 만큼 아직 시간 여유가 좀 있기 때문에 금통위는 기다렸다가 연준의 의사록 등을 확인한 뒤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통위가 위원 합의제 의결 기관이기 때문에 총재 참석 여부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오히려 현재 금통위원들 가운데 가장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성향이 강한 주상영 의원이 직무대행으로서 의장을 맡으면, 회의에서 매파(통화긴축 선호) 목소리가 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의장은 보통 개인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견해가 반으로 갈릴 때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데, 주 위원을 빼고는 현재 대부분 위원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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