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쾅 쾅' 하더니 사방에 신체조각"…기차역 생존자 증언

입력 2022-04-09 09:17
수정 2022-04-09 19:42
[우크라 침공] "'쾅 쾅' 하더니 사방에 신체조각"…기차역 생존자 증언

미사일 떨어진 카라마토르스크역은 참혹 그 자체

러 동부 공세강화 속 민간인 피란길 오르다 참사

"시신 근처엔 지팡이·장난감"…제2의 마리우폴 되나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폭발음이 두 번 들렸다. 몸을 피하려고 벽 쪽으로 달려갔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역 안으로 들어가고, 땅바닥 여기저기에 시체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에서 AFP통신과 만난 나탈리아 씨는 이날 8일(현지시간) 오전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떨어졌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같은 시각 역 안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주민 옐레나 칼레몬바 씨는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도처에 사람들이 있었다. 떨어져 나간 팔다리와 살점, 뼈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고 전했다.

칼렌몬바씨는 "폭발로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 피란민으로 가득 찼던 대기 구역으로 파편이 날아들었다"며 "한 노인은 다리를 잃었고, 다른 사람은 머리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떨어진 시각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기차역엔 러시아군의 공습을 피해 중서부 지역으로 가는 첫 기차를 기다리던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 수천명이 있었다.

러시아군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당국의 경고에 최근 며칠간 기차역에 피란민이 몰려들고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분리주의자이 있는 전략적 거점 돈바스 지역의 완전 장악을 위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피란민 다수는 피란길에 오르기도 전에 숨졌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군이 쏜 토치카-U 단거리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50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이후 현장에 도착한 외신들이 전한 현장은 참혹했다.

군과 경찰은 시신들을 모아 방수포로 덮었다. 피투성이가 된 짐과 개인 물품이 역과 승강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불구가 된 한 개가 희생자 옆에서 떨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AFP는 민간인 복장의 시신 약 30구가 시트에 덮여있었으며 땅바닥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고 전했다. 승강장에 놓인 시신 옆에는 지팡이와 장난감 토끼도 보였다. 역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벤치 아래에선 작은 운동화가 발견됐다. 시신들 사이로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기도 있었다.

한 여성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남편을 찾고 있다"며 떨고 있었다. 그는 WP에 "남편이 여기 있었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남성은 첫 번째 폭발로 바다에 쓰러졌지만 이후 다른 사람이 덮쳐 최악은 면했다고 말했다.

그는 온몸에 파편이 박혔고 등과 다리에도 상처를 입었다. 그는 "내 위로 떨어진 시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며 "그들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고 전했다.



당시 승강장 대기 구역에 있었다는 알렉산더 플러셰프씨는 "민간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기차역을 공격할 수 있냐"고 비판했다.

부상자들은 시내 두 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료진은 한 명이라도 더 목숨을 살리려고 고군분투했다.

한 병원의 수술실 5개가 꽉 찼고, 복도에서도 진료가 이뤄졌다.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와 부상자들의 비명 등이 뒤섞였다.

치료도 여의치는 않은 상황이다.

병원에서 만난 한 병사는 "현장에서 부상자 50여명이 도착했는데 다수가 죽을 것 같다"며 "피를 많이 흘렸는데 혈액이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러시아어로 흰색 페인트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러시아 파편이 발견됐다. 이는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2014년 1차 돈바스 전쟁 발발 후 그들의 손실을 언급하면서 반복적으로 썼던 표현이다.





역 밖에선 불탄 차들이 보였다. 한 경찰관은 "이건 토치카 미사일, 파편성 폭탄"이라며 "축구장만한 장소 곳곳에서 터진다"고 설명했다.

도네츠크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기차역을 집속탄으로 폭격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집속탄은 미사일 모체에서 소형폭탄 수백개가 흩뿌려져 넓은 지역에 무차별적인 살상을 가하는 무기다.

한 역무원은 "여기가 다음 마리우폴이 될까요?"라며 흐느꼈다.

마리우폴은 한달 이상 러시아군의 집중 포격·공습이 쏟아진 곳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마리우폴의 도시기반 시설 90% 이상이 파괴되고, 민간인 5천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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