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르포] 쿠데타 군부 장악 언론엔 '러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신문·TV '부차 학살' 보도 안해…우크라 침공 러 주장만 일방 보도
러, 미얀마 군부 옹호·무기 판매…군부는 "러, 주권 행사" '유유상종'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우크라이나 부차 등지에서 발생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사태로 전 세계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끔찍한 반인륜 만행에 국제 사회가 러시아를 상대로 추가 제재를 가하는가 하면, 러시아 외교관들을 줄줄이 추방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쿠데타 군부가 14개월째 권력을 쥐고 있는 미얀마 내 '합법적' 언론에서는 이 사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자는 우크라이나 부차 민간인 학살 사태가 국제사회 이슈가 된 지난 4∼5일 미얀마 신문들과 TV 방송을 살펴봤다.
신문은 지난해 2월 쿠데타 이후로 국영인 더 미러, 미얀마 알린 그리고 영자지인 '글로벌뉴라이트오브미얀마'(The Global New Light of Myanmar) 그리고 군부가 운영하는 더 먀와디만 발행되고 있다.
4일 자 더 미러와 미얀마 알린 국제면에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각국의 코로나19 확진 상황과 브라질 홍수, 예멘 내전 휴전 소식 등이 실려있었다.
더 먀와디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공격에 대비한 러시아의 해상 훈련 소식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다음 날인 5일 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 미러와 미얀마 알린은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확진 상황, 세계 각국의 사건·사고를 전했는데 역시나 우크라이나 소식만 '쏙' 빠져 있었다.
더 먀와디는 전날과 비슷하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비난에 앞장서 온 나토와 영국군에 대한 러시아의 강력한 대응 방침만을 보도했다.
TV도 상황은 비슷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는 국영방송인 MRTV와 군부가 운영하는 먀와디(Myawaddy) TV, 두 방송국만 TV 뉴스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그런데 TV만 보면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 힘들 정도였다.
두 방송의 4일, 5일 저녁 8시 메인뉴스에서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보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 주장을 싣는 뉴스도 없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나 민간인 학살 사태를 보도할 경우, 문민정부를 무력으로 내쫓은 뒤 1천7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자신들의 행보를 '소환'할 수 있다는 판단을 군부가 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드는 대목이다.
외국인들이 보는 국영 영자지인 글로벌뉴라이트오브미얀마만이 5일자 국제면에 외신을 인용해 부차 지역에서 수 백구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다는 단신 기사를 실었다.
대신 바로 밑에는 우크라이나 측의 조작이라는 크렘린궁의 반박 단신 기사도 '친절하게' 실었다.
지난 2월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군사정권 하의 관영 언론들은 비록 짧게나마 관련 소식을 실어 왔다.
물론 서구 언론과 비교해 러시아의 주장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긴 했다.
그러나 군부가 운영하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도되는 경우라도, 철저히 러시아 측의 주장만을 담고 있다고 미얀마인들은 입을 모은다.
미얀마 군부와 러시아간의 '밀월' 관계를 고려한다면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쿠데타 이후 국제사회에서 중국과 더불어 러시아만이 '유이'하게 군부를 지지했다.
중국과 더불어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쿠데타 군부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제재도 막았다.
쿠데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지난해 2월 쿠데타 이후 유일하게 방문한 국가가 바로 러시아기도 하다.
톰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은 러시아가 쿠데타 이후에도 미얀마 군부에 지속해서 무기를 수출했다고 지난 2월 지적한 바 있다.
군부는 이에 호응하듯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대변인 명의로 "러시아군은 주권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을 전개했다"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준 것"이라고 옹호했다.
전형적인 '유유상종'인 셈이다.
이와 비교해 쿠데타 군부에 의해 '불법'으로 지목된 이라와디, 미얀마 나우, 미찌마 등 독립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민간인 학살 사태를 SNS를 통해 비교적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4일 양곤 사우스 오깔라빠 지역에서 간단한 음식과 차를 파는 윈 나잉(가명·49) 씨에게 우크라이나 사태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윈 나잉 씨는 "다 알고 있다"며 "미얀마 언론은 전혀 보지 않으니 그 내용을 보도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SNS를 통해 모든 정보를 접하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네이 치(가명·34)씨도 러시아의 침공을 알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은 크게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얀마에서도 1년 넘게 쿠데타군의 민간인 학살이 계속되고 있는데 왜 우크라이나처럼 전 세계적으로 떠들썩하게 보도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기자에게 미얀마 현실을 꼭 좀 보도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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