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업 임원들, 주가급락 전 지분 팔아 12조 이상 손실 회피"

입력 2022-04-06 11:39
"중국기업 임원들, 주가급락 전 지분 팔아 12조 이상 손실 회피"

미국 상장 알리바바·아이치이 등 고위임원 거래 정황 드러나

외국기업 내부자거래는 '2일 이내 공시' 규정 예외…"미 증권법 허점 막아야"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내부자들이 지난 몇 년간 주가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 주식을 팔아 12조원 이상의 손실을 회피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버트 잭슨 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 등이 작성한 논문에 따르면 미 증시 상장 중국 기업의 고위 임원 등 내부자들은 2016년부터 지난해 중반까지 주가 급락 이전 대량 매도로 최소한 100억달러(약 12조2천억원)의 손실을 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내부자가 주식을 대량 매도한 뒤 1년 뒤 해당 기업 주가는 평균 21% 떨어졌다. 같은 기간 미국 기업 내부자들의 거래 이후 주가가 평균 2%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논문이 다룬 외국 기업들의 내부자들은 해당 기간 이 같은 방식으로 총 119억달러(약 14조5천억원)의 손실을 피했다.

이들 기업의 소재지는 총 8개국으로 이 중 중국에 있는 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러시아나 케이맨제도, 네덜란드에 소재한 기업도 있었다.

WSJ은 2020년 알리바바 주식 거래를 내부자거래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했다.

그해 10월 알리바바의 핀테크 계열사 앤트그룹은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었다. IPO로 알리바바가 보유한 앤트그룹 지분 3분의 1의 가치가 많이 커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당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연설에서 중국 감독 당국을 비판한 뒤 분노한 당국은 앤트그룹 상장을 무기한 연기시켰다. 그 직후 2020년 11월 3일 뉴욕증시에서 알리바바 주식은 8.13% 급락했다.

공시 자료에 따르면 앤트그룹 상장 중단 발표 하루 전 한 알리바바 내부자가 지배하는 한 법인이 1억5천만달러(약 1천830억원) 어치 알리바바 주식을 매각했다.

이 내부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알리바바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회사로부터 막대한 주식을 보상으로 받았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앞서 보도했다.

공시에 따르면 당시 매각은 이보다 2개월 전 도입된 '10b5-1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 이는 내부자가 주가에 영향을 미칠만한 비공개 정보가 없을 때 정해진 시기에 거래하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잭슨 전 SEC 위원 등 3명의 연구자는 중국 기업과 미국 기업의 내부자 거래가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은 미 증권법의 허점도 작용했다고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미국 기업의 임원과 다른 주요 주주는 자사 주식 거래를 2일 이내에 공시해야 하며, 이는 SEC의 기업공시 사이트(EDGAR)에 올라가 투자자들이 곧바로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이런 규정은 기업 내부자의 나쁜 행동을 방지할 수 있다. 시기가 완벽해 보이는 거래를 놓고 투자자나 언론의 눈초리를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하지만 증권당국은 1990년대 초 외국 기업들의 미 증시 상장을 유도하기 위해 외국 기업은 내부자 거래 공시 관련 규정에서 제외했다. 대신 이들의 거래는 종이 서류 형태로 워싱턴DC의 SEC 본부에 보내져 캐비넷에 보관되기 때문에 사실상 접근이 제한된다.

연구자들은 당국이 외국기업 임원에게 예외를 인정한 허점을 막아 내부자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WSJ은 중국 기업 임원들이 내부자거래를 더 과감하게 하는 데는 이들이 미국의 법적 시스템 밖에 있다는 점 등 다른 이유도 있다면서도, 여전히 거래 내용 공시는 강한 제어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내부자들이 많은 정보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들의 거래를 주시하는데 2002년 미 기업 내부자들의 거래 공시 기한이 종전 1개월 이상에서 2일로 단축된 이후 내부자들의 수익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잭슨 전 SEC 위원은 미 상원의 내부자거래법 청문회에 출석해 외국 기업들에 미국 기업과 동일한 내부자거래 보고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할 예정이다.

지난해 중국 당국의 광범위한 기술기업 규제를 앞두고 아이치이 등 중국 기술기업 임원들도 '시기적절한' 주식 매각으로 손실을 피한 패턴이 나타났다.

'중국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치이 임원들은 지난해 3월 며칠 만에 1억2천500만달러(약 1천500억원) 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이후 주가는 2개월 만에 반 토막 났으며 그해 10월에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슷한 시기 전자상거래업체 웨이핀후이(唯品會·Vipshop) 고위 임원들은 주가가 사상 최고에 가까울 때 2억5천만달러(약 3천억원) 넘는 주식을 매각했다. 이 회사 주가는 그 뒤 6개월간 70% 넘게 떨어졌다.

y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