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코스타리카 대선서 경제학자 차베스 당선 유력
성희롱 스캔들에도 결선서 전직 대통령에 5%P 앞서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중미 코스타리카의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학자 로드리고 차베스(60)가 승리를 눈앞에 두게 됐다.
코스타리카 최고선거재판소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 개표가 96%가량 진행된 상황에서 사회민주진보당(PPSD) 차베스 후보가 52.9%의 득표율을 기록 했다.
상대 후보인 국가해방당(PLN) 호세 마리아 피게레스(67) 전 대통령의 득표율은 5%포인트 이상 낮은 47.1%다.
지난 2월 1차 투표에선 피게레스가 27.3%, 차베스가 16.8%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는데 결선에선 차베스 후보가 역전했다.
1994∼1998년 한 차례 집권했던 피게레스 전 대통령은 초반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일찌감치 패배를 시인하고, 차베스에 축하 인사를 전했다.
당선이 확정되면 차베스 후보는 카를로스 알바라도 케사다 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내달 8일 취임해 앞으로 4년간 코스타리카를 이끌게 된다.
코스타리카 산호세 태생의 차베스 후보는 코스타리카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수학한 경제학자다.
세계은행에서 30년가량 재직했고, 현 정부에서 2019년 10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재무장관을 맡기도 했다.
정치 이념적으로는 중도 내지 중도우파 성향으로 분류된다.
차베스는 선거 기간 과거 성희롱 전력이 폭로돼 위기를 맞기도 했다.
세계은행 재직 중이던 2009∼2013년 여러 명의 여성 직원을 성희롱한 혐의가 인정돼 강등 처분을 받은 사실이 현지 언론 보도 등으로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최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시 세계은행 최고경영자(CEO)였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차베스의 성희롱을 알고도 눈 감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차베스 후보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였다"고 해명했다.
세계은행을 그만 두고 재무장관직을 수락했다가 대통령과의 이견 등으로 7개월 만에 물러난 차베스 후보는 자신이 만든 신생 정당 PPSD 후보로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기존 정치 체제 개혁과 부패 척결 등을 약속했고, 1차 투표에서 예상 밖 선전을 펼치며 결선에까지 올랐다.
로이터통신은 차베스를 "호전적인 경제학자"라고 표현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등 반(反)기득권을 자처한 지도자와도 비견된다고 전했다.
국회에 지지 기반이 약한 그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국회에 맡기는 대신 국민투표를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인구 500만 명가량의 코스타리카는 중남미 국가 중 정치·사회·경제면에서 비교적 안정된 나라로 꼽힌다. 군대가 없고, 국민 행복도가 높은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을 겪으면서 관광업이 위축돼 실업률이 14% 수준까지 치솟았고, 재정 적자도 확대됐다. 아울러 정치권의 부패 스캔들도 잇따라 국민의 피로와 불만도 커졌다.
경험과 안정을 내세우며 1차 투표 1위를 차지했던 피게레스 전 대통령도 과거 프랑스 기업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에 발목이 잡혔다.
두 후보 모두 스캔들에 시달리면서 이번 결선 투표율은 60%를 밑돌았다.
신임 대통령은 여러 세력으로 갈라진 국회와 함께 코스타리카의 경제를 살리고 부패를 해소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쉽지 않은 임무를 맡게 됐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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