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격동의 100년 지켜본 우크라 할머니 "푸틴 죽었으면"
"가장 무서운 사람…홀로도모르·2차대전 이어 몸서리"
"러 국민, 선전에 '좀비화'…과거 스탈린 추종한 나도 창피"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푸틴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야."
1922년 8월에 태어난 안나 바하텔랴는 격동의 우크라이나 현대사 100년의 산증인이다.
그는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 자택에서 영국 일간 가디언에 "또 한 번 우크라이나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1932∼1933년의 대기근 '홀로도모르'와 2차대전을 몸소 겪었던 그는 옛 소련의 해체까지 지켜봤다.
초유의 코로나19 대유행 중에도 감염을 피해갔던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공이라는 또 다른 역사의 복판에 서게 됐다.
20세기 소련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억압과 2차 대전 주범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침략을 모두 겪었다.
그런 만큼 이런 고난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할까 우크라이나의 노인에게는 현재 전쟁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우크라이나 요양원 원장은 가디언에 "우리 시설에 있는 다수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하텔랴는 최대한 전쟁 소식을 파악하려고 한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사정을 몰랐던 탓에 독재자인 스탈린을 추종했던 기억이 있어서다.
바하텔랴의 딸 올하 푸니크(69)는 "전쟁 관련 소식이 나오면 TV를 끄려고 한다"면서 "그러면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고 자신이 겪었던 옛 전쟁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나치가 바햐텔랴가 살던 마을을 점령했던 1943년 6월, 그는 나치에 끌려가 오스트리아의 한 마을 내 공장에서 2년간 노동력을 수탈당했다.
바하텔랴는 "당시 아침에 한 번 빵 4분의 1조각, 하루에 두 번 묽은 수프를 먹었고 일요일마다 감자를 먹었다"고 회고했다.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소련군이 나치를 밀어내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는 폐허가 된 고향을 마주하고 소련의 구성원으로서 애국심이 차올랐다고 말했다.
푸니크는 "어머니는 스탈린이 죽었을 때 슬퍼서 울었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비극으로 여겼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오늘날 많은 러시아인이 자국의 선전에 '좀비화'된 것처럼 당시 우크라이나인들도 그랬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바하텔랴는 '곧 다가오는 100번째 생일에 어떤 일이 있길 원하냐'는 질문에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하텔랴는 '그'가 누군지 특정하지 않았지만 명백히 푸틴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키이우 서쪽 외곽 지대에 홀로 사는 84세 주민 아나톨리이 루반도 바하텔랴처럼 매일 들려오는 폭발음과 전쟁 소식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2차 대전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그는 1950년대 후반 소련군으로 복무했으며 친구 중 러시아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자국을 침공한 푸틴 대통령을 두고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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