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서 미국과 한조된 이란 축구팬들 "이기거나 순교하거나"
이란 감독 "나는 정치적이지 않아…축구에 집중할 뿐"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2022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에서 이란이 미국과 함께 B조에 묶이자 이란 내 축구 팬들은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란은 1979년 2월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왕정에서 반미 신정일치 정권으로 통치 체제가 급변했고, 그해 11월 벌어진 444일간의 주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단교했다.
전방위 경제 제재를 통한 '최대 압박' 정책 속에 이란은 미국에 대한 저항을 주창해 왔다. 현재 이란은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제재를 푸는 협상을 미국과 벌이는 중이다.
국영 IRNA 통신은 2일(현지시간) 전날 진행된 월드컵 조 추첨 결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소개했다.
축구팬 마지드(25)는 IRNA에 "카타르 월드컵 B조 경기는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거나 순교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다른 축구팬 모하메드(50)는 미국과의 경기를 전쟁에 비유하며 "이 경기에서 다친 선수들은 '국가유공자'로 대우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헤란 시민 알리(32)는 "미국전에 안사룰라(예멘 반군 후티)와 헤즈볼라(레바논 무장정파)를 같이 내보내 싸우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멘 반군과 헤즈볼라는 중동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세력이다.
또 다른 축구팬은 이란 대표팀과 핵협상팀을 함께 보내 축구 경기를 보면서 협상을 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이란은 잉글랜드, 미국, 유럽 플레이오프 승리 국가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이란과 미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맞붙은 적이 있다. 당시 이란은 2대1로 승리했다.
24년 만의 재대결을 앞둔 양 팀 감독들은 정치와 스포츠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이란의 드라간 스코치치(크로아티아) 감독은 "나는 정치적이지 않으며 축구에 집중한다"면서 "이것이 스포츠에서 가장 좋은 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대표팀 감독 그레그 버홀터는 "1998년 이후 24년이 지났고, 70년대로부터 더욱 멀어졌다"며 "우리는 단지 축구 경기를 할 뿐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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