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전쟁에서 죽는 건 가난한 벽지 출신 병사들"
가디언 보도…"소수민족 공화국 출신 전사자들 불균형적으로 많아"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러시아 극동 부랴트 공화국의 울란-우데 마을 스포츠센터.
지난 28일(현지시간) 이곳에선 6천4O0㎞나 떨어진 우크라이나의 전쟁터에 투입됐다 숨진 이 지역 출신 병사 4명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 가운데 한 명인 불라트 오도에프의 친척 올가 오도에바는 참전이 그와 가족의 뜻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속한 팀에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고 전쟁에 나가는 것이 의무라고 느꼈다"면서 "가족의 의견은 권한을 가진 분(의 의견)과는 달랐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몽골과 바이칼호 사이에 있는 부랴트공화국은 러시아에서도 가장 외지고 가난한 지역에 속한다. 월평균 급여는 4만4천루블(약 62만원)에 불과하다. 약 100만명의 주민들 가운데 30~40%가 부랴트족이다.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된 병사들 가운데 다수가 이 같은 벽지의 소수민족 출신이라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부랴트의 독립언론 루디 바이칼라에 따르면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이 지역 출신 전사자는 45명에 이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벽지인 캅카스 산악지대의 다게스탄공화국에서는 최소한 130명의 병사가 전사했을 것이라고 라디오 브소보다가 집계했다.
부랴트와 마찬가지로 몽골과 국경을 접한 투바공화국에서는 96명이 전사했다고 지역 출신 상원의원이 밝혔다.
이들 3곳의 오지에서 확인된 사망자는 최소 271명으로, 러시아가 현재까지 밝힌 전체 전사자가 1천351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불균형적'이라고 할 만큼 많다.
부랴트에서 장례를 치른 4명의 병사 가운데 2명은 제11근위공정여단 소속이었다. 이 부대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결정적 전투였던 안토노프 공항 점령 작전에 투입됐다.
이곳의 부대가 해외의 전장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부랴트의 한 탱크여단은 지난 2015년 우크라이나 내전에 투입돼 친러 분리주의 반군과 함께 싸우기도 했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 파벨 루진은 이처럼 벽지 출신 소수민족 병사들이 전쟁에 동원돼 죽어가는 데는 어둡고 냉혹한 이유가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행히도 평균적인 러시아인은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푸른 눈의 병사들이 죽었을 때와 비교하면 부랴트 또는 다게스탄 출신 병사들의 전사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쓴다"고 지적했다.
군사작전을 기획하는 이들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병력을 보내지 못하는 전투임무에 부랴트 병사들이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공정과 불의에 항거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부랴트를 지역구로 둔 뱌체슬라브 마르하에프 국가두마(의회)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가장 가까운 우리 이웃과 전면전을 벌인다는 계획을 숨겼다"고 비난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브랴트인들도 '전쟁에 반대하는 브랴트인들'이라는 반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처벌이 두려워 익명을 요구한 한 브랴트족 예술가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아는 젊은이들이 많다"면서 "우리는 우리와 상관없는 전쟁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아들이 우크라이나에서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1인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리나 오치로바처럼 더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이도 있다.
그러나 아들 세르게이를 되찾을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에도 아무런 응답을 얻지 못한 그는 "아들이 아직 살아 있을지를 생각하면 밤새 잠을 이룰 수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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