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키운 지구촌 인플레…서민 고통 가중에 사회 불안 자극

입력 2022-03-31 05:30
수정 2022-03-31 09:00
푸틴이 키운 지구촌 인플레…서민 고통 가중에 사회 불안 자극

식품·기름값 급등에 민생고 악화…파키스탄 총리 불신임 위기

이라크·스리랑카서 시위도…한국 등 각국, 서민부담 완화 모색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30년 전 크리켓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우승을 이끌며 국민적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랐던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

임기 5년 가운데 1년 5개월가량을 남긴 칸 총리가 권좌에서 밀려날 수 있는 최대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야당 의원들이 이달 28일(현지시간) 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칸 총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심각한 경제난이다. 치솟는 물가에 민심이 흉흉하고, 정적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파키스탄은 남아시아 지역에서 물가 고통이 가장 큰 나라 가운데 하나다. 올해 들어서도 소비자물가가 10%를 넘게 뛰면서 빈곤층은 물론 중산층의 생계난도 심해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주요 곡물과 원유 등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우크라이나산 밀 등 원자재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파키스탄의 민생고가 악화해 칸 총리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 "이집트 등서 식량 가격은 '정치적 화약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으킨 전쟁이 지구촌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키우고 일부 국가에서는 민심을 자극하며 정치적 이슈로도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세계적 곡창지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식량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낙진'이 취약국가와 빈곤층에 피해를 줄 것"이라며 "정치적 불안과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USIP의 아프가니스탄 전문가인 윌리엄 버드 박사는 "이집트와 같은 나라에서 식품 가격은 '정치적 화약고'"라고 설명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2010년대 초반 식량 가격 폭등 등으로 인한 사회 불안 때문에 '아랍의 봄'으로 불린 반정부 시위가 잇따라 일어나 튀니지, 이집트, 예멘 등의 정권 교체가 이뤄진 역사가 있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 가운데 하나인 이집트에서 빵은 서민들의 주식이다. 이집트는 밀 소비량의 60%가량을 수입하는데 이 중 80% 정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온다.

이집트 정부는 빵 가운데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닌 빵의 가격이 뛰자 최근 가격 상한선을 정해 임의로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이달 초 이라크의 남부 도시 나시리야와 중부 바빌 주에서는 밀가루 등 식품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 서민 생계난 가중…반정부 시위도 벌어져

인도에서는 기름값 인상을 놓고 정부와 야당이 각을 세우고 있다.

힌두스탄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오른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야당에선 최근 5개 주 의회 선거가 끝나자 가격을 인상해 서민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경제난이 더욱 심해진 스리랑카에서는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지난달 터키에선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케말 클르츠다오을루 대표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에너지) 가격 인상을 철회할 때까지 전기요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수입 가격 상승을 반영해 가스와 기름, 전기 등의 가격을 올린 데 대한 반발이다. 가정용 전기료의 경우 약 50% 인상되자 이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USIP의 버드 박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끝내야 세계 빈곤층과 취약국가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선진국도 커지는 서민 고통에 완화 대책 추진

인플레이션 악화로 서민의 고통이 커지는 것은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영국 싱크탱크인 레졸루션 재단은 지난 24일 정부가 생계비 위기에 처한 저소득 가구를 지원하지 않을 경우 내년에 어린이 50만명을 포함해 130만명이 절대빈곤에 빠질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영국에서 경기 불황 때를 제외하고 절대빈곤층이 늘어나는 것은 처음이라고 레졸루션 재단은 설명했다.

지난달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0년 만에 최고치인 6.2%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로, 물가 고공행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7.4%다.

영국 정부는 가계의 생활비 압박이 커지자 내년 3월까지 유류세를 L당 5펜스(약 80원) 내리고, 저소득층의 소득세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식량 가격이 뛰는 것과 관련, 빈곤가정에 식품 쿠폰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20%인 유류세 인하 폭의 확대를 비롯한 서민 물가 안정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kms123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